전설과 역사가 넘나드는 고마나루
백제의 도읍지로 고마나루, 곰나루(웅진), 곰주(웅주), 공주가 되다
2023.09.15(금) 16:32:35 | 화목하게은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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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j8624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images/cnportal/bbs_info.gif)
지금 공주는 매우 핫한 지방도시가 되었습니다.
지방도시의 소멸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지요.
옛 명승을 되찾아 가는 공주를 곰주(웅주), 곰나루(웅진), 고마나루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고마나루는 연미산 아래 유유히 굽어도는 금강변 맞은 편에 자리잡은 백제의 전설입니다.
![고마나루 웅진단](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40.jpg)
▲ 고마나루 웅진단
![고마나루 맞은편의 연미산과 금강변 백사장](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41.jpg)
▲ 고마나루 맞은편의 연미산과 금강변 백사장
![연미산에서 바라본 금강 물줄기](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43.jpg)
▲ 연미산에서 바라본 금강 물줄기
산이나 강이나 곰 이야기가 녹아들지 않으면 공주는 존재 이유가 빈약합니다.
금강변 고마나루와 고마나루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연미산은 곰 이야기의 한 세트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고마나루를 가면 연미산을 올라 가 보아야 하고 연미산을 올라 가 보면 고마나루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미산 중턱에는 곰굴이 있습니다.
![곰굴 안내판](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45.jpg)
▲ 곰굴 안내판
![연미산 곰굴](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46.jpg)
▲ 연미산 곰굴
![연미산 곰굴](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48.jpg)
▲ 연미산 곰굴
곰굴은 나무꾼을 사랑한 웅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담긴 “곰나루의 전설”이 시작된 곳입니다.
암곰이 처음 본 나뭇꾼에게 사랑을 느껴 납치하듯 동굴에서 강제로 동거하면서 새끼도 두 마리씩이나 낳은 후 도망가지 않으리라 믿었던 나뭇꾼이 도망치자 처절한 몸부림으로 새끼 두 마리와 함께 금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생가(生家)이지요.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1](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50.jpg)
그래선인지 연미산을 바라보며 귀 기울이면 지금도 암곰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곰굴 속의 암곰](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52.gif)
▲ 곰 가족이 투신한 연미산 아래 금강
곰 가족이 투신한 후 이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풍랑으로 뒤집히는 일이 잦아지자 고을 사람들은 강 옆에 사당(웅신당)을 짓고 곰의 넋을 달래 주었답니다.
고마나루에서 6C 경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들어진 곰상이 출토되었지요. 그 곰상은 현재 공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그 자리에 웅신당(熊神堂)을 지어 숭배의 예를 올린답니다.
![곰사당내 돌곰상(모조품)](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53.jpg)
▲ 곰사당내 돌곰상(모조품)
![고마나루 웅신당과 대문](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55.jpg)
▲ 고마나루 웅신당과 대문
![웅신당(곰사당)](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57.jpg)
▲ 웅신당(곰사당)
![웅신단비](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59.jpg)
▲ 웅신단비
금강의 물이 남동편으로 휘어돌고 餘美山 올려다 뵈는 한갓진 나루터
공주의 옛 사연 자욱하게 서린 곳
입에서 입으로 그냥 전하여온 애틋한 이야기
- 웅진단비에 새겨진 처음 구절 -
안내 간판을 따라 발걸음을 고마나루 전망대로 옮겨 봅니다.
전망대가는 도중에 울창한 솔숲을 지나고 돌곰상들도 많이 만나 안부를 전해 봅니다.
솔숲길은 황토흙으로 잘 다져 있어 맨발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근처 어르신들이 맨발로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2](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61.jpg)
![전망대로 가는 소나무 숲길](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68.jpg)
▲ 전망대로 가는 소나무 숲길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3](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70.jpg)
![소나무 사이에서 외로운 은행나무의 풍성한 결실](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72.jpg)
▲ 소나무 사이에서 외로운 은행나무의 풍성한 결실
![솔숲 멀리 보이는 곰사당](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74.jpg)
▲ 솔숲 멀리 보이는 곰사당
![솔숲길](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75.jpg)
▲ 솔숲길
![대나무 병풍에 둘러싸인 솔숲](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77.jpg)
▲ 대나무 병풍에 둘러싸인 솔숲
![솔숲 속에 조성된 돌곰상들](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79.jpg)
▲ 솔숲 속에 조성된 돌곰상들
![솔숲에서 맨발로 산책하기](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81.jpg)
▲ 솔숲에서 맨발로 산책하기
솔숲길에서 청솔모를 만났습니다. 다람쥐는 귀여운 모습이지만 청솔모는 사납고 거칠은 야성을 보입니다. 그래도 청솔모를 만나니 솔숲이 왕성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4](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85.jpg)
고마나루는 곰나루의 전설과 함께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모래 언덕 위에 조성된 울창한 솔숲, 그리고 연미산 아래 금강변에 길게 자리한 고운 백사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전망대에 도착하니 앞으로 길게 뻗은 백사장과 연미산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나타납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5](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92.jpg)
![동편방향 백사장](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66.jpg)
▲ 연미산 아래 동편방향 백사장
전망대 옆에는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 터(熊津壇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웅진단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고 이 제사를 웅진단제라 하였답니다. 이는 계룡산 산신제(山神祭)와 함께 유교식으로 지내는 수신제(水神祭)라 하네요.
![고마나루 전망대 옆 웅진단 터](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63.jpg)
▲ 고마나루 전망대 옆 웅진단 터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6](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64.jpg)
공주는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예요.백제(문주왕)는 첫 번째 도읍지였던 한성(몽촌토성 한강유역)을 고구려(장수왕) 군에게 빼앗기고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475년에 험준한 산지가 주변을 애워싸고 금강으로 둘러싸여 방어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인 웅진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60여년간 백제의 중흥기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7](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697.jpg)
고마나루는 단순히 경치좋고 강 건너 반대편 마을로 가는 여느 나루터와는 달리 백제의 숨결이요 심장이며 수 많은 역사를 품은 큰 마을이었습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8](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709.jpg)
웅진으로 천도 후 백제는 금강을 따라 해상 무역을 활발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 들여 일본으로 전해 주었음이 이 곳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에서 확인되었답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9](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710.jpg)
고마나루는 왕들의 은신처였습니다.
의자왕의 마지막 항전도 이곳에서 있었고 1011년 거란족의 침입으로 나주로 피난갔다가 잠시 머물렀던 고려의 현종 임금과 1624년 이괄의 난으로 6일간 머물렀던 조선의 인조 임금의 피난처이기도 했답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10](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715.jpg)
전망대 앞에 황토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발자국이 눈에 띕니다. 사람 발자국인지 곰 발자국인지 분간할 수 없는 초대형 발자국이예요.
분간하기 어려운 건 숨어 있는 역사의 진실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11](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723.jpg)
백제의 두번째 도읍지로써 곰에 얽힌 전설과 수많은 역사가 압축된 이곳 고마나루에서 멀리 강 건너 연미산에서 울려 퍼지는 곰의 절규를 듣고 울창한 솔숲길을 거닐고 황토흙을 밟으면서 백제의 숨결을 느껴 보았습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12](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30907/IM0001991725.jpg)
충남 공주시 웅진동 산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