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군이 발 빠르게 ‘친일파 기념물’ 정비에 나섰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고장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들의 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한 것.
대상은 ‘백성을 자애롭게 여기고, 청렴하고, 고결하여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대흥군에 각별한 선정을 베풀었다’는 해설이 달린 △정낙용 상공 영세불망비(군청앞 비석군) △정주영 관찰사 청덕선정비(군청앞 비석군)·상서 유혜기념비(대흥의좋은형제공원 비석거리) △이건하 관찰사 영세불망비·순상 거사비(대흥의좋은형제공원 비석거리)다.
군에 따르면 <무한정보>가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소녀상 건너편 친일파 기념물’을 보도한 뒤,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 독립운동사·조선시대 전문가 현장자문을 받아 친일행적을 기록해 알릴 수 있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필요한 예산은 제2회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군비로 확보했다.
세 사람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물사전에 이름을 올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다.
이건하는 대한제국기 중추원 찬의와 충남도관찰사 등을 지낸 경기도 광주 출신이다. 1910년 한일합병(경술국치) 공로 남작 작위, 1911년 은사공채 2만5000원,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 등 종4위에 서위됐다.
정낙용은 일제가 1910년 남작 작위, 1911년 은사공채 2만5000원,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을 하사한 인물이다. 장남인 정주영은 작위를 승계해 1915년 조선총독부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시정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연 ‘시정5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의’ 특별회원으로 참여해 기부했다. ‘다이쇼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도 받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1900년 8월 정주영과 대술 시산리로 내려와 어린 시절을 보낸 딸은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김구 선생이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칭한, ‘임시정부의 어머니’ 수당 정정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