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위치한 돈암서원(사적 제383호)은 김장생(1548∼1631)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인조 12년(1634)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은 훌륭한 분들의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양성하던 지방교육기관이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은 예학의 대가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은 인물이다.
입덕문은 덕에 이르는 문이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분들은 관리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군자가 되는 게 목표로 자기 수양을 쌓는 게 우선이었다.
입덕문을 지나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양성당’이다. 사계 김장생 선생이 실제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다는 이곳은 엄격한 질서와 정교한 형식을 중시했던 조선 시대 예학의 섬세한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양성당 앞에 서로 마주 보고 있두 건물을 동재, 서재라고 하며, 제자들이 늘 기숙하면서 공부하는 곳인데, 서로를 마주하며 격려하는 유생들, 그리고 그들 모두를 골고루 살피던 스승의 눈길을 이곳 양성당에서 상상할 수 있다.
전학후묘의 건물배치양식에 따라 양성당 뒤쪽에는 사당이 있다. 사당의 이름은 숭례사다. 숭례사에는 사계 선생과 그의 제자 등 모두 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담장에는 그들의 예학 정신이 깃든 글귀도 새겨져 있다.
지부해함은 땅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은 그런 인품을 지니셨다는 뜻이고. 박문약례는 학문은 넓게 배우고 배운 것은 행동으로서 예로서 표현하라는 뜻이다.
서원의 서쪽에는 특이한 지붕구조가 눈에 띄는 큰 건물이 홀로 서있다. 김장생 선생이 중국 예서의 건축방식에 따라 설계해 지은 ‘응도당’(국보 제1569호)이라는 이 건물은 국내 서원 중 가장 큰 강당이라고 하며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서원으로 이름을 지으며 내려준 현판이 걸려있다.
이 서원은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남아 보존된 47개의 서원중의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 있는 곳이다.
조선 시대 예학 정신이 깃들어있는 곳. 역사 속에 멈춰버린 기억이 아닌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유산이다. 이제는 충청의 유산을 뛰어넘어 세계의 유산으로 더 오래 기억되고 보존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