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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공주와 충남, 그땐 이랬구나'

충남역사박물관 ‘충남인의 100년 전 생활상 특별사진전’을 보고

2020.11.10(화) 15:36:42 | 윤석천 (이메일주소:dj3637dh2927@hanmail.net
               	dj3637dh292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시 중동 충남역사박물관에서는 현재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주최로 ‘충남인의 100년 전 생활상 특별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개막해 이번달 말까지 한달간 진행하는 행사이다.
 
과거에 우리 충남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찾아가 보니 놀랍고도 신기한 사진들이 많았다. 참 볼거리 많은 사진전이었다.
  
이번 사진전은 논산 출신으로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던 임연철 박사가 제공했다고 한다. 임 박사는 ‘이야기 사애리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미국 드루대 감리교 문서보관소를 방문해 다량의 충남 관련 사진들을 찾아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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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인의 100년 전 생활상 특별사진전’이 진행되고 있는 충남역사박물관, 현재 국화꽃 전시회도 함께 열리고 있어 이곳에 가면 국화향에 한동안 취할 수 있는 행운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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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역사박물관에 들으서면 이렇게 기획전시실과 함께 넓은 공간에 많은 사진들이 전시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 찬찬히 보면서, 거기 적힌 당시 생활상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면 느끼는 바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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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만나는 이 사진.

공주학교 명선여학당 교사와 학생들을 찍은 이 사진은 여러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무엇보다도 이 안에 유관순 열사가 있다는 점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측은 앞에서 세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소녀 이 분이 유관순 열사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우선 이 사진은 1915년 7월에 촬영했다. 그리고 촬영일자 위에는 '공주학교 Kongu School” 라고 쓰고, 그 아래에 1905년 개교(School opend 1905)했다는 문구가 있다.
 
사진 뒷면에 공주에 있던 감리교 여성 해외 선교사회 숙소 옆에서 촬영했다는 장소까지 밝히고 있다. 공주학교 명선여학당 설립자인 앨리스 샤프, 한국명 사애리시와 교사진 3명이 누구인지 밝혀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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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분(위 단체사진 앞에서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소녀)이 유관순 열사로 추정된다. 유열사는 샤프 선교사의 추천으로 1916년 이화학당에 교비생으로 편입됐는데, 사진은 그 한 해 전 유열사가 재학했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1915년에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1915년은 유열사의 13세 때다. 13세부터 유열사가 1919년 10월 구속되면서 찍은 사진과는 4년의 시차가 있는데, 이 시기는 성장기로 얼굴이나 신체가 크게 변해 사진 속의 학생 중 1인을 특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얼굴사진 전문가들이 가장 확실한 사진인 서대문형무소의 차림과 과학적인 비교 검증을 거친다면 사진 속의 1인을 특정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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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이분, 공주가 키운 '독립의 꽃' 유관순 열사의 '신앙의 어머니' 고 사애리시(일제강점기 미국 선교사) 여사다. 사애리시 여사는 올해 초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미국에서 선교사로 들어온 사애리시 여사는 당시 공주를 중심으로 20여 개 교육기관을 세우고 충남 전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1914년 천안에서 만난 유열사를 수양딸로 삼았다가 서울 이화학당에 교비생(장학생)으로 편입시킨 첫 멘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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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가 사춘기 때 다녔던 공주 영명학당(현재 공주 영명 중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유관순 열사와 사애리시 여사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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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시가지의 어제와 오늘을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으로 나눠 비교해 놓은 것이다. 옛 정취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고, 현재는 개발이 돼 더 세련된 모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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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김정섭 공주시장님(맨 왼쪽)과 충남역사박물관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아 사진을 둘러보며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참 좋은 기획으로 사진전을 열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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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고등학교 남학생들 단체사진인데, 태극기를 걸고 찍은 것으로 보아 1911년에서 1910년 사이에 할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재미있는 장면은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남자는 다리를 거만하게 꼬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반면, 그 옆의 남자는 머리를 숙이고 있다.
짐작컨대 다리 꼰 남자는 양반가의 아들이고, 머리 숙인 남자는 학문에 뜻은 있었으나 하층민이어서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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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교에서 공부하고, 선교사가 가르치고,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모습 등이 다양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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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좁은 기숙사에서 잠을 자고 있는 학생들, 워낙 좁아서 칼잠을 자는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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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린이들의 모습이다. 뒷줄 이규갑 선생은 아산 등의 지방교회를 다니면서 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모금운동을 하고,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일을 한 애국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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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가져가기 위해 짐꾼이 물건을 산더미처럼 싣고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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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재봉틀. 난생 처음 보는 기계인데 이를 다루면서 웃는 여인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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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음식찌꺼기를 수집하는 사람들과, 지게를 지고 가는 소년과 지게를 고정하는 소년, 우리나라 지게는 세계적인 발명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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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 온 자동차와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주민들 모습으로, 사진 설명에 따르면 자동차는 1915년 전국에 70∼80대가 있었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서울에 있어 공주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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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에 나룻배를 띄워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저걸 타고 여름에는 천렵도 하며 낭만을 즐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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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장수와 아이들. 사탕을 사먹고 싶으나 돈이 없어 사탕장수의 ‘선행’을 고대하며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나 애처롭다.
“옛다. 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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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공주에서 벌어진 축제 모습이다.
 
이번 사진전에는 이밖에도 남학생들의 바퀴쟁기와 납땜, 가마니짜기, 누에고치에서 실뽑기 실습 장면도 있다. 금강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과 공주시내 주류판매점, 과일가게 등의 장면도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공주에 이런 여러 귀한 사진들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근대기 공주가 충남의 도청소재지여서 공주의 중심지와 시장, 생활상 등 옛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기획전이므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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