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이응노 마을. 연잎 푸른 시절의 생가 사진을 우연히 본 뒤로 항상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랬던 곳을 일행 중 한 명의 제안으로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무대에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학생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생가 마당에는 음식이 차려지고 있었다. 마침 한바탕 마을 잔치가 벌어진 날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응노마을 문화예술잔치 라는 글자들이 보였다. 빈 자리에 앉으니 한 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홍성군자원봉사센터와 자봉 학생들이 수고해주셨다.) 처음 먹어보는 연잎 국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맛은 기본이고 후한 인심까지! 어디가서 돈 안내고 이런 상 받아보기 힘든 시절이긴 하다.
문 잠궈 놓고 겉모습만 구경하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잔치를 벌이는 장소라니. 고암 이응노 선생이 흐뭇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맹이 시절 우리동네에도 이런 잔치를 벌이던 곳이 있었는데! 음식 준비하시는 마을분들 모습을 보니 그 시절 추억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응노마을은 2015년부터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을 벌여왔는데 이날은 마침 그 사업을 마무리 짓는 자리였다. 이름없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주민들이 함께 하는 예술마을로 거듭나고 있는, 지금까지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긴 책자를 들춰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이날은 찻집에서도 연잎차를 무료로 나눠주었고, 미술 작품이 전시중인 기념관도 무료 입장이었다. 뜻하지 않은 호사를 누린 셈이다. 생가 기념관에는 2016년 제 3회 고암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은태 작가의 작품이 전시중이었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작품을 모두 돌아보고 나오면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내가 발딛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마주한 기분이라고 할까. 거기에 우리 엄마도 있고 남편도 있고 내 아이도 있었다. 물론 나도.
▲ 기도2, 2007 요철장지에 아크릴
▲ 둑방길, 2012 캔버스에 아크릴
▲ 기다리는 사람들, 2015 캔버스에 아크릴
전시장을 나온 일행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기념관 옆 찻집에서 받아든 따뜻한 연잎차를 두 손으로 감싸들고 연밭으로 걷는다.
겨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11월 4일 그날은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 개관 6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우연히 들렀던 우리들에겐 늦가을 정취에 흠뻑 빠졌던 소풍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