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기미독립선언문을 직접 인쇄 배포한 이종일 선생

충남을 빛낸 역사속 말띠인물<8, 끝>- 국권회복과 민중계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2014.09.19(금) 00:28:40 | 이기현 (이메일주소:jhdksh8173ahj@hanmail.net
               	jhdksh8173ahj@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을 빛낸 역사속의 말띠인물, 그동안 일곱분의 역사적 인물을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 충의의 상징, 당대 최고 문필가 등 충남의 자랑이면서 대한민국 문화 정치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으신 분들이었기에 기획취재를 하면서 큰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실학자 이중환, 문인화의 대가 추사 김정희, 충의의 상징 김종서, ‘껍데기는 가라’의 저항시인 신동엽,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독립운동가 조병옥박사, 조선의 제갈량 송익필 선생 이렇게 일곱분이었는데요.
 
이제 충남을 빛낸 역사속 말띠인물 마지막 어르신, 옥파 이종일 선생이십니다.
 
이분을 잘 모르는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중요한 사실은 이종일선생께서는 우리가 역사교과서에서 배웠던 기미독립선언문을 당시 살벌한 일경의 감시망을 피해 직접 인쇄하신 장본인이십니다.
 
이종일 선생께서는 1858년 11월 6일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시고 1874년 15세가 되던 해에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서울로 올라와 문과에 급제(정3품) 하셨습니다.

1884년에는 보성보통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교육사업에도 전력을 다하였고 경향 각지의 7개 학교장을 역임하셨다고 합니다.
 
1896년 독립협회가 발족되자 여기에 참가하여 활동했고, 1898년에는 청년애국회에 관여하는 한편, 2월에는 유영석 등과 함께 대한제국민력회(大韓帝國民力會)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습니다.

대한제국민력회는 주말마다 실학사상, 동학사상 등을 강의하는 한편 러시아 세력의 침투 배격과 이권수호를 주제로 만민공동회가 열리자, 회원 40여명을 이끌고 여기에 참가하여 국권수호와 이권의 양여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1898년 3월에는 경성신문을 창간하는 한편, 8월에는 순한글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여 언론인으로서도 큰 활동을 했습니다.

제국신문은 독립협회 회원들의 홍보지로서 민권운동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필화사건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1906년에는 대한자강회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하다가, 이 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자 1907년 그 후신으로 조직된 대한협회에서는 회보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하는 등 한시도 민중계몽과 언론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종일 선생의 인생에 중대한 전기가 찾아옵니다.
즉 3.1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승낙한 것입니다.
 
이어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원고를 스스로 조판, 교정,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한 후 기미년 3.1 민족대표 한 사람으로서 서울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일경에게 체포되어 3년의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1922년에는 천도교 단독으로 제2의 3.1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으나 발각되어 실패했습니다.

이후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으로 한글맞춤법을 연구하는 한편 3년간 ‘한국독립비사’를 집필했으나 일본경찰에게 압수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후 70평생을 한결같이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을 부르짖으며 모든 것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치다 1925년 8월 31일 68세의 일기로 서거하셨습니다.
 
그리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해마다 태안의 선생 생가에서는 추모 제향이 열립니다. 금년도 8월 31일에도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이종일 선생 생가지에서 추모제향이 거행됐다고 합니다.
 
이날 추모제향은 이종일선생 추모사업회가 주관하고 태안군이 후원해 주민, 학생, 공무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상기 태안군수가 직접 초헌관으로(제를 지낼때 제일 먼저 제주를 따르는 사람) 나서서 선생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모 제향에 이어 2부 행사에는 초, 중학생 사생실기와 글짓기 대회도 열어 학생들의 애국심 함양과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됐답니다..
 
우리 부모님들.
이제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에게 “너, 기미독립선언문이 뭔지 알지?” “네” “그럼, 그때 일제의 살벌한 감시망을 뚫고 그것을 인쇄해서 전국에 뿌린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 “.... 글쎄...요. 야우뚱!” 이럴때 자신있게 “충남 태안의 옥파 이종일선생이셔. 꼭 기억해 두렴”이라고 말씀해 주실수 있겠죠?
 
이것으로서 ‘2014, 충남을 빛낸 역사속 말띠인물’ 여덟분에 대한 기획취재를 마칩니다.
내년에는 양띠 인물에 대한 기획취재를 하겠습니다.
 
이종일 선생 생가지 =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09

기념관 전경

▲ 기념관 전경




선생의 생가지 기념관 옆 동상

▲ 선생의 생가지 기념관 옆 동상


기념관

▲ 기념관


기미독립선언문

▲ 기미독립선언문


기념관 입구

▲ 기념관 입구


선생의 모습

▲ 선생의 모습


활동상 연표

▲ 활동상 연표


기미독립선언문 인쇄중

▲ 기미독립선언문 인쇄중


민족대표 33인의 회의

▲ 민족대표 33인의 회의


선생을 체포한 뒤 죄를 물은 조서

▲ 선생을 체포한 뒤 죄를 물은 일제의 조서


대한민국 정부가 선생께 드린 훈장

▲ 대한민국 정부가 선생께 드린 훈장


체험관

▲ 체험관


기미독립선언문을직접인쇄배포한이종일선생 1


체험관 내부

▲ 체험관 내부


생가

▲ 생가지 안내문


생가 초가집

▲ 생가 초가집


ㄷ자형 생가 내부

▲ ㄷ자형 생가 내부.

 

이기현님의 다른 기사 보기

[이기현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