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젊은 세대들에게 장 가르기란 말을 알 수 있을까요? 가까운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온갖 장류가 즐비하니, 사서 먹으면 그만일 뿐입니다. 그러니 장을 담그는 게 뭔지, 그 과정이 어떤지 알 리 없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찍어내는 '공장식 된장'은 회사 이름만 다를 뿐 장맛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유는 유사한 재료와 공법으로 15일 정도 단기간에 숙성한 '밀가루 된장'이기 때문이죠.
진짜를 만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세상 천안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아우내 전통장 만들기 체험행사를 했는데요. 얼마 전 장 가르기를 해야 한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장 가르기란 잘 말린 메주를 소금물에 띄워 60일 이상 숙성시킨 후 간장과 된장을 갈라내는 작업을 말한답니다.
천안시 병천면 죽계리에 조성된 아우내 전통장에서는 일찍 오신 분들이 된장, 간장 분리 작업에 주민들의 손놀림이 부산스럽습니다.
아우내 전통장에서 제공한 점심식사를 한 후 따뜻한 봄날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이야기도 나누며, 장 가르기 작업을 하였습니다.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윤나는 장항아리에서 먼저 옻나무, 고추, 숯을 골라내어 버립니다. 바로 메주는 된장이 되고 장물은 간장이 됩니다.
독에서 꺼낸 메주는 넓은 그릇에 옮겨 담고 장물을 부어 손으로 치대 으깨주면 됩니다.
어느 정도 으깨고 나면 항아리에 담고 편편해지도록 꾹꾹 눌러 준 후 마른 고추 씨앗 가루로 표면을 덮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엄마는 남은 간장을 고운 체에 걸러 간장독에 따로 담았습니다.
잘 말린 메주를 소금물에 띄워 60일 이상 숙성시킨 후 간장과 된장을 갈라내고, '장 가르기'를 하고 나서 8개월 정도 지나 겨울이 오면 햇된장을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콩을 수확하고,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그고, 장 가르기를 하고, 익기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우리네 전통된장은 곰팡이, 세균, 효모를 두루 활용한 복합발효 식품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생태계를 효모와 곰팡이, 세균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았던 조상들은 여기에 깨끗한 천일염, 맑은 물, 그리고 청명한 바람과 햇빛까지 활용하여 된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