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을 빛낸 역사속의 말띠 인물 3 -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문무를 겸비한 천재
▲ 김종서 장군의 유허지로 가는 길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의당초등학교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있고,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산아래 민가가 몇채 있는데 그 주변에 외롭고 쓸쓸한 자그마한 묘역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 의당에서 태어나신 김종서 장군의 유허지입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394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는 ‘김종서 장군 유허지’라는 안내판이 외롭게 장군의 유허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 유허지와 유허비
그 뒤로 유허비와 유허지 조성에 대한 의미, 그리고 장군의 업적을 적은 기념비가 작게 만들어져 있고 작은 계단 위에는 장군의 넋을 위로하는 유허비가 서 있습니다.
유허비에는 ‘충익공절제김종서장군유허비’라고 한문으로 음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유허지이기 때문에 묘와 봉분은 없습니다. 장군의 넋을 기리고자 만든 곳입니다.
비문에는 당신의 충절과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소상히 적혀 있습니다.
장군은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여 계속 관직을 섭렵하면서 1426년 이조정랑, 1427년 사헌부집의 황해도경차관 등에 올랐고, 세종때에는 북쪽 변경의 여진족을 쫓아내고자 함길도 관찰사 및 함길도병마도절제사가 되어 7, 8년간 북쪽 변방에서 여진족을 무찌르고 비변책(備邊策)을 올리는 등 4군 6진을 개척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토가 이때 비로소 압록강 두만강 상류까지 넓어졌던 것입니다.
이후 1440년 서울로 돌아와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내고, 그뒤 충청 전라 경상 3도의 도순찰사로 근무하셨다지요.
위에서 본 것처럼 대체로 무인의 활약을 하신 것이기에 오늘날까지 장군으로 불리는 계기가 된 것인데 실제 문관으로서의 역할과 업적이 참 컸답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세종실록의 편찬 작업을 책임지는 등 학자이자 관료로서의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계셨지요.
그러나 계유정난으로 위의 업적은 사서들에서 그의 이름은 모두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자, 이제는 계유정난 이야기를 안할수 없겠네요.
그는 세종 때부터 임금의 신임을 받는 관료였지요. 문종도 죽음을 앞두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등과 함께 우의정인 김종서 장군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세종의 여러 왕자들이 다투어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가운데, 수양대군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는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인물로 그를 지목하고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한명회, 권람 같은 모사꾼과 한량들을 끌어 모으고 사병(私兵)을 키워 마침내 1453년(단종 1) 10월 13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김종서 장군의 집으로 가서 장군과 그의 아들 승규를 살해한 것입니다.
뒤이어 이들은 단종에게 김종서 등이 반역을 도모하였다며 대역모반죄를 씌워 보고했고 연달아 왕명을 빌어 대신들을 소집한 다음 자신의 목적달성에 방해가 되는 신하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습니다.
그런 김종서 장군이 충신으로서, 그리고 뛰어난 학자이자 관료로서 명예를 회복하는데 무려 30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동안 그의 시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조차 모르게 처참하게 멸문지화를 당했는데 어쨌거나 300년이 지난 후인 영조대에 복권되면서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역사의 한 단면을 볼까요.
계유정난에 변절자로 역사에 남은 신숙주는 김종서 장군의 휘하에서 일했었다고 합니다. 이후 신숙주는 생을 마감할때까지 철저한 수양대군의 사람으로서 모든 최고의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부귀영화를 누렸지요.
다시 장군의 유허지를 돌아 봅니다.
맑고 푸른 하늘아래 장군의 유허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충절비만 외롭게 서 있습니다.
마른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아래 유허지. 이곳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곳에 유허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입니다.
유허지 비문 돌 틈에 난 조그만 풀잎 싹이 봄을 재촉합니다.
유허비를 보러 오르던 계단을 내려오며 문득 뒤돌아 다시 유허비를 바라봅니다. 너무나 아쉽게 세상을 떠난 충신이자, 인물의 타고난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채 떠난 아쉬움이 짙게 느껴집니다.
유허지에서 바라본 의당초등학교입니다.
자라나는 우리 어린 새싹들이 이런 충신의 얼을 받아 바르고 강건하고 올곧은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