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을 빛낸 역사속의 말띠 인물 2 -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
▲ 현재는 세종시로 편입된 과거 조치원 금강변에 있는 독락정
▲ 뒷쪽으로는 금강이 유유히.. 금강대교가 어렴풋이 보이고.
▲ 독락정 바로 옆의 고려 충신 임난수 장군의 충의를 기려 지은 사당과 가묘
▲ 가까이서 본 독락정
▲ 현판
▲ 파란 하늘과 독락정
▲ 멀리서 본 독락정
▲ 금강 물줄기를 옆에 끼고.
▲ 이곳에서 인문학의 꿈을 키운 이중환 선생
충남 문화재자료 264호로 지정돼 있는 독락정은 정면 3간에 측면2간으로 되어있는데 그 앞으로 유유히 금강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중환 선생은 이곳에서 산과 강을 보며 인문지리에 대한 관심과 꿈을 키웠나 봅니다.
▲ 사송정 마을 초입
두 번째는 공주시 월송동의 ‘사송정’입니다.
월송동에 가면 원래 사송정이 있던 자리에는 충절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 사송정 마을의 명탄서원
▲ 사송정 마을의 충절사
사진을 찍기 위해 제가 찾아가 마침 그곳에서 만나 뵌 마을 어르신께 사송정의 위치를 물으니 사송정이라는 정자는 따로 없고 마을 전체를 일컬어 그렇게 불러 왔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만 믿고 사송정 자리에 있는 명탄서원과 충절사만 찍어 왔지 뭡니까.
▲ 사송정(공주시 홈페이지 자료사진)
다시 집에 돌아와 자료를 뒤져 보니 실제 사송정은 1995년 공주시가 원래 위치에서 국도 40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 콘크리트로 건물로 사송정을 복원하여 놓았다는군요.
아... 이런 허탈감.
어쩔수 없이 공주시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자료 사진이 석장 있었습니다.
복원된 사송정은 산으로 난 비탈길을 따라 약 15m 정도의 계단이 설치되었고, 경사면을 절삭하고 축대를 쌓아 만들었는데 멀리 흐르는 금강을 조망할 수는 있답니다.
사송정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선생의 아버지인 이진휴가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는 사실과 아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사송정은 우리 집의 것이다(四松吾家)”라고 기록한 내용에 비추어 1701년(숙종 27) 이진휴가 사송정을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젠 택리지로 돌아가 보죠.
택리지에서 그는 우리 삶의 주요 지표로 삼은 지리, 생리, 산수, 인심 네 가지를 지목했습니다.
첨단 정보통신시대가 아닌 당시에 이 4가지야말로 민중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것일듯 합니다.
그는 우리 국토를 두루 답사하면서 팔도의 자연과 환경, 인물을 세밀하게 정리하여 택리지에 담음으로써 250여년 전 조선의 산천을 생생히 복원할 수 있게 해 준 것입니다.
택리지는 사민총론, 팔도총론(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복거총론(지리, 생리, 산수, 인심)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민총론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래와 함께 사대부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사대부로서의 행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혼상제의 사례를 지키기 위해 여유 있는 생업을 가져야 하며, 살만한 곳을 마련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네요.
팔도총론에서는 우리 나라 산세와 위치를 중국의 고전을 인용하여 논하고 있으며, 팔도의 위치와 그 역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답니다.
여기서 그는 경상도는 변한과 진한의 땅이고 함경 평안 황해도는 고조선 고구려의 땅, 강원도는 예맥의 땅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복거총론은 이 책 전체 분량의 거의 반을 차지할 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18세기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주거지 선호의 기준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거를 선정하는 기준으로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들었고, 그 어느 것이 부적당하여도 살 곳이 못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리는 풍수에서 말하는 지리의 뜻이고, 생리는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유리한 위치이며, 생리에서는 비옥한 토지, 어염과 내륙의 곡물과 면화가 교역되는 위치, 그리고 해운과 하운의 요지 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심에서는 세상 풍속이 아름다운 곳을 말해줍니다.
또한 산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인심을 순박하게 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었답니다.
택리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리서이며 동국여지승람을 대표로 하는 종전의 군현별로 쓰여진 백과사전식 지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다룬 팔도총론, 도별지지, 그리고 주제별로 다룬 인문 지리적 접근을 갖춘 새로운 지리지의 효시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파트를 짓거나 개인주택을 지어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시때때로 전국의 명산과 바다 등으로 여행도 다닙니다. 모든게 삶의 한자락이며 끊임없는 이웃들과의 소통이고 마을과 사회를 이뤄 종국에는 국가를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훈훈한 이웃들의 인심도 따지고 보면 이중환의 택리지가 말하는 복거총론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중환 선생은 우리 삶의 먼 이전부터 미래까지 제대로 보고 있었던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