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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여름나기 풍류, 부채의 달인을 만나다

충남무형문화재 21호 서천 부채장 이광구 선생 인터뷰

2013.08.02(금) 00:53:50 | 관리자 (이메일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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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에는 전통의 멋과 풍류를 이어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을 무형문화재라고 합니다.

 충남의 무형문화재는 홍성 댕댕이장과 지승제조, 예산 대목장, 공주의 상여소리, 한산 소곡주, 한산 모시짜기 등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이번 도민리포터가 취재한 서천 부채장 이광구 장인도 있습니다.

서천 부채장 무형문화재21호 이광구 장인 댁

▲ 서천 부채장 무형문화재21호 이광구 장인 댁.
 

이광구 선생의 부채 공방에 걸려있는 젊은시절 부채 만드는 장면 사진.

▲ 이광구 선생의 부채 공방에 걸려있는 젊은시절 부채 만드는 장면 사진.


 이광구 장인께서는 전통부채를 만들고 그 명맥을 이어오신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 충남무형문화재 21호로 지정되어 있으십니다.

 이광구 장인과의 인터뷰 전에 부채에 대해 간략히 문화재청에서 올려 놓은 자료를 보겠습니다.

 부채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후백제의 견훤(재위 892∼935)이 고려 태조(재위 918∼943)에게 공작선을 바쳤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합니다.

공방에 전시돼 있는 여러 종류의 부채들

▲ 공방에 전시돼 있는 여러 종류의 부채들
 

제작이 끝난 부채들

▲ 제작이 끝난 부채들
 

종류가 다른 완성된 부채들

▲ 종류가 다른 완성된 부채들


 부채는 원선과 접부채로 크게 구분되는데 공작선은 원선에 속하여 일명 방구부채라고도 불립니다. 이 원선에는 오엽선, 연엽선, 좌초선, 태극선, 공작선 등이 있고, 이중에 공작선은 화려하면서 품위가 있어 옛부터 귀한 공예품으로 사랑을 받아왔다고 하네요.

 이광구 장인은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계셨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부인께서 받으셨습니다. 이선생님이 몸이 좀 안좋아 요즘 쉬고 계시다고 해서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인터뷰중인 이광구 선생 부부

▲ 인터뷰중인 이광구 선생 부부


 거실에서 이선생님과 부인께서 함께 앉아 그간 부채장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부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어렸을적부터 그의 부친이신 이한규씨로부터 공작선 제작기술을 전수받았고 현재 이 공작선 제작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아버지 이한구 선생의 생전 부채 만들던 모습

▲ 아버지 이한규 선생의 생전 부채 만들던 모습


 아버지인 이한규씨의 기술 역시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랍니다. 그의 증조부인 이군중씨 , 조부이신 이을용씨와 부친 이한규씨를 거쳐 이광구씨까지 무려 4대에 걸쳐 내여론 것이라 하니 실로 대단합니다.

 공작선은 부채 선(扇)자가 들어있어 글자만 보아서는 부채의 이름이 같지만 실은 조상때부터 벽걸이 장식용으로 즐겨 쓰던 기물이라고 합니다.

크기가 큰 부채

▲아래 왼쪽의 공작선을 비롯해 종류별로 전시중인 부채들
 

이 공작선의 무늬는 모두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라 합니다.

▲ 이 공작선의 무늬는 모두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라 합니다.


 부채의 살대는 3~4년생 대나무만을 사용하고, 부채 날개는 한지를 사용하십니다. 한지도 그냥 붙이는게 아니라 무명으로 속지를 입힌 다음 겉지를 한지로 한번 더 입혀 완성을 시킨다고 하네요.

 특히 공작의 머리 부분인 손잡이는 굵기가 적당한 참죽나무를 사용하여 고급스럽게 만드는데 이 나무 역시 간벌이나 벌목을 하는 곳에서 찾아 활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채 손잡이. 기계로 깎아다 쓰는게 아니라 참죽나무를 직접 손으로 깎은 100% 수공예품입니다.

▲ 부채 손잡이. 기계로 깎아다 쓰는게 아니라 참죽나무를 직접 손으로 깎은 100% 수공예품입니다.
 

순수 수공예로 깎아 만든 손잡이가 참 예쁩니다.

▲ 순수 수공예로 깎아 만든 손잡이가 참 예쁩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에서 주민들도 산을 오가다가 베어진 참죽나무를 발견하면 꼭 이선생께 가져다 주신다고 하는군요.

 부채를 만들면서 가장 신이 났던 때는 86년도에 치른 아시안게임 때와 88년도의 서울올림픽 때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몸도 젊어서 마음껏 일할 수 있었던데다가 여기저기서 전통부채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녀들까지 부채 만드는데 일손을 도왔다 하네요.

 그러던 것이 값 싼 중국산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수요도 많이 줄고, 지금은 부채의 필요성에 의해서라기 보다 정통미로서만 찾기 때문에 이것으로 생업은 불가능하다 하십니다.

 언제나 그 'made in china‘가 문제군요.

입상과 무형문화재 지정 증명서

▲ 입상과 무형문화재 지정 인증서


  입상 경력은 1993년에 공예대전에서 입선을 했고, 1994년에도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으셨다합니다.

  현재 이선생께서는 부채의 공작선뿐만 아니라 화봉선, 선녀선, 산봉선 등을 함께 제작하고 있는데 이 기술을 앞으로 셋째 사위인 유방석씨가 전수중이라는군요.

 제가 찾아 갔던 날에는 사위께서 현재 수원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집에 안계셨는데 주말과 휴일 같은 때 짬짬이 내려와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게라도 소중한 우리의 전통 무형문화재의 명맥이 끊기지 않고 유지될수 있다는게 천만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다른 무형문화재들도 마찬가지로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부채장은 그런 위기는 없는것 같습니다.

 사위님께서도 장인어르신의 부채 전통기술을 잘 배워 우리의 소중한 전통의 멋과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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