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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청의 자랑 사계 김장생과 우암 송시열을 찾다

2013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충남교육연수원과 함께 한 인문학 여행

2013.06.25(화) 16:12:39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중등교사 문화 창의체험 직무연수팀 30명이 충남역사박물관, 충남교육연수원과 함께 한 2013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사계 김장생과 우암 송시열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여행'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대행 김정섭) 충남역사박물관(관장 오석민)은 충남교육연수원(원장 김한겸)과 함께 충남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들 30명과 6월 15일 부터 1박 2일간 제2기 역사 창의체험직무연수 2013년 기호유학 인문학포럼'사계 김장생과 우암 송시열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여행'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전체 6회의 문화.문학.역사 창의 체험 직무 연수 중 6번째 마지막 탐방 직무연수인 이번 행사에는 충남의 중등교사 30명이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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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연수단은 충남역사박물관에서 모여 박물관의 유물을 살펴 근.현대사와 당시대의 자료들을 보며 새삼 추억도 떠 올려 보고 새로운 모습들에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박물관 관람 후 시작된 유적 답사는 제일 먼저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에 자리한 은농재에 들러 사계 김장생 문중 대표로 부터 사계의 삶과 후손들의 궤적을 담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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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27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두계 은농재[豆溪 隱農齋]는 충남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에 위치해 있으며 광산김씨문원공파종중이 소유 관리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 왔을 때 이곳에 머물면서 그 제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던 유서깊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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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농재가 있는 이 사계 고택은 약 2,800여평의 넓은 대지에 앞으로 구봉산이 바라다 보이는 좋은 전망이며  남쪽으로부터 대문채.은농재.행랑채.안채, 그리고 그 뒤에 가묘가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고 안채의 왼쪽편에 나 있는 협문을 지나면 다시 안별당 건물이 있고 그 앞쪽으로 연못이 있습니다.
 
논산의 자랑 중 하나인 예학의 대가 김장생이 말년을 보낸 곳인 은농재는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었으나 1995년 해체 복원할 때 모든 부재를 새로운 부재로 바꾸어 고풍스러움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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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이나 개.보수에 임하는 자세를 도히돌아 보게하는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년(명종 3) ~ 1631년(인조 9)]은 사헌부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의 아들로 태어나 전란 후 혼란기에 다시 예(禮)를 세운 학행지사로 조선의 유학자, 정치인, 문신이며 동방 18현 중의 한 사람이로 자(字)는 희원(希元), 시호는 문원(文元), 호는 사계(沙溪), 본관은 광산인데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이어받아 17세기 사림의 시대에 걸맞게 조선 예학(禮學)을 정비한 예학의 대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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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은 3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황강(黃崗) 김계휘(金繼輝, 1526∼1581)가 세상을 떠나자, 상례와 제례를 한결같이 가례대로 하였는데, 이듬해에 김장생은 신의경(申義慶)이 편집한 '상제서(喪制書)'를 정리하고 절충하여 일반인이 쓰기에 편하도록 정리한 '상례비요(喪禮備要)'를 완성하였으며, 52세(1599년)에는 관혼상제의 예를 고찰한 '가례집람(家禮輯覽)'을 완성하였는데 김장생이 예론(禮論)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는, "모든 인간이 어질고 바른 마음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의 행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질서가 필요하다"라고 보고, 그것을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578년(선조 11년) 학행(學行)으로 천거받아 관직에 올라 창릉참봉, 돈령부참봉 등을 지내고 순릉참봉(順陵參奉), 평시서봉사(平市署奉事)를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송익필의 문하와 성혼의 문하를 출입하며 학문을 연마하였고 인조 때 호조참판과 형조참판을 지낸 뒤 가의대부 행용양위부호군에 이르렀으며,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고 송익필과 이이, 성혼 등의 제자이자 계승자로 기호학파를 형성, 확장하는데 기여하였고, 예학에 정통하였으며 김집, 송시열 등을 길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 찾은 돈암서원[論山 遯巖書院]은 논산평야를 배경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번지 들판에 위치해 있으며 인조 11년(1633) 창건.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예학파(禮學派) 유학자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면적 5,590㎡에 세워졌고 1993년 10월 18일 사적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서원으로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려준 서원으로 사계선생을 중심으로 그 아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 등 네분을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1880년(고종 17) 현재의 위치인 연산면 임리 74로 이건하였는데, 이는 원래 서원이 있던 자리의 지대가 낮아 홍수로 서원에 물이 들어와도 막을 수 없이 피해를 당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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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이름이 된 '돈암'은 서원이 처음 창건되었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하임리 숲말 산기슭에 있던 바위의 모습이 돼지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의 서원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는데 계룡도령이 아직 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응도당 앞에는 그와 같은 모양의 바위를 만들어 세워 두었으니 본 것이나 진배없을 듯합니다. 
 
산앙루는 최근에 세워진 건축물로 그 역사성을 이야기 할 수는 없으나 돈암서원 건물 배치나 높이 등을 고려해 볼 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건축물이라 하겠습니다.
 
현재의 돈암서원은 동쪽을 향해 앞으로 펼쳐진 일대의 들판을 내다보고 있으며 서원 경내의 건물과 시설물로는 사당인 사우(祠宇) 숭례사(崇禮祠), 양성당, 동재와 서재, 응도당(凝道堂), 장판각(藏板閣), 정회당(靜會堂), 산앙루(山仰樓),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등과 송덕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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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竹林書院)은 율곡 이이.우계 성혼.사계 김장생.정암 조광조.퇴계 이황.우암 송시열 등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이날 지붕 을 새로 이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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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괘정과 임리정을 거쳐 일행이 도착한 곳은 새로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강경역사관'입니다.
 
강경역사관은 2012년 9월 4일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에 자리잡고 개관하였는데 이 건물은 1913년에 신축된 붉은벽돌조 건물로 중앙독서실, 충청은행으로 사용되었고 개인소유의 젓갈창고였다가 시에서 구입하여 역사관으로 사용하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근대기의 강경을 상징할 수 있는 빼어난 건축물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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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우리나라 원종의 백합과 자귀나무 그리고 능소화와 부레옥잠화가 만개한 명재고택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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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은 열린 공간으로 대한민국 건축학도들의 성지이기도 한 이곳 명재고택은 300여년전 건축된 건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과 비교해도 오히려 더 과학적이랄 수 있는 건축 기법들이 총 동원되어 지어진 한옥으로 당시의 실학적 가치와 과학적 수준, 예술적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살아있는 건축학 박물관이라고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종손인 윤완식 선생과 인사를 나누고 윤증고택 안채마당에서 가진 떡 전골, 가지소박이, 국말이, 타래과 등 명재가문과 이삼장군가문의 전래 종가음식 체험은 선생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았습니다.
 
특히 이날 함께 한 선생님들 중 남자 선생님들만 따로이 모아 가지소박이 김치 담그기를 실시했는데 강사인 윤증 종부의 설명이 좋아서 였는지 늦둥이의 칼질까지 감상하며 좋은 솜씨로 잘 만들어 찬사를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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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에서 마련한 천연의 재료로만 만든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뉘엿뉘엿 해가지는 시간 노서서재에서 '기호유학과 우리의 생활'이라는 주제로 건양대 교양학부 김문준 교수의 강연이 있었는데 한류문화와 공자주의의 재 부상에 대해 깊이있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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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서 흥겨운 우리가락 '해설이 있는 가야금 음악회'가 대한민국 1호 쌍둥이 가야금연주 가수 가야랑의 무대가 펼쳐져 기립박수로 화답한 천상의 연주는 가야랑의 손끝에서 자연의 울림통을 통해 모두의 가슴에 전달된 아름다운 선율은 길고 긴 여름밤을 짧게 느끼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더구나 가야랑의 첫 스승이자 어머니인 옥계 변영숙교수님의 딸 이예랑과 변영숙교수님과의 협연은 억만금을 주고도 만나기 힘든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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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앵콜로 새벽 일찍 시작되는 녹화 일정이 있어 청송으로 출발해야 하는데도 약속시간 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감동의 시간을 함께 하게되었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더 감사를 표합니다.
옥계선생님 감사합니다.
^^

아름다운 가야금 연주가 끝나고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습니다.
 
난생처음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 선생님들은 들뜬 듯 각자의 방으로 이동하고, 좋은 공기 속에서 이룬 단잠이라서 일까요? 다들 새벽같이 일어나 노성산성 등 이곳 저곳 주변을 다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고택을 유지하며 종손으로서의 역활을 다하고있는 윤완식 종손으로부터 예와 절이 사라져 버린 지금의 세태를 되돌아 볼 바른 생활과 마음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종손과의 대화 '윤완식 선생이 들려주는 고택이야기'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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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종손인 윤완식씨는 7남매의 둘째 아들인 그에게 종손이라는 책무가 부여된 것은 7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종손인 큰 형이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15년 전 작고하자 윤완식씨의 아들 윤형섭씨가 종손의 대를 이어야 했고,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어린 후손에게는 버거운 일이었고 그래서 그가 ‘종손’을 대행했고 이후 문중에서는 그를 12대 종손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윤완식씨는 15년 전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부인이나 가족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훌쩍 고향집에 내려와 집안을 돌보면서 생활해 왔으며 '사단법인 한국 고택문화재소유자 협의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고택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으며 고택 한쪽에 있던 '초연당' 초가를 새로이 지어 이곳에 '노서서재'라는 아담한 서가를 꾸며 작은 도서관으로 운용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우리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땅을 파고 유물을 묻어 지켜낸 종가의 유물 1만643점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기탁하여 연구하게하고 충남역사박물관에 전시 보관할 수 있도록 해 지역문화의 연구 창달에 앞장 서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택을 지키며 드는 비용 때문에 매년 줄어드는 서을의 집 규모에 고심하다 집안의 간장을 상품화해서 ‘교동간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명재고택에는 사시사철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듭니다.
 
많은 광고의 단골 장소이기도 하고, 수 많은 사진가들도 명재고택의 아름다움을 담기위해 찾는데 특히 길게 늘어선 장독대는 눈이 내린 날이면 어김없이 붐비는 명소 중의 명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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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에서 판매하고 있는 된장과 간장은 교동 전독간장(校東전독간장)이라고 부르는데 윤증(尹拯, 1627~1714)선생 종가에서 300여년 전부터 전해 오는 장류이며 교동(校東)이라는 명칭은 노성향교가 고택 옆으로 이전해 오면서 향교의 동쪽에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붙여졌으며, 전독간장은 항아리(독)째 전해져 내려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판매를 하게 된 이유가 맛의 나눔에도 의의가 있지만 고택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작으나마 보탬이 되길 희망해서라고 합니다.
 
종손과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노서서재에 모인 일행은 우리의 전통놀이라 일컫는 '쌍육'놀이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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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역사박물관 조민희연구사로부터 배워서 직접 하게된 이 놀이는 백제 때부터 존재 하였다고하고 놀이 방법도 여러가지라고 하는데 계룡도령이 해 보지 않은 놀이라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를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생님들은 말을 거꾸로 보내기도 하는 등 폭소를 자아내며 하긴 했지만 금방 배워서 잘 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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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쌍육놀이는 위 사진의 선생님 팀이 우여곡절끝에 1등을 하였고 그 부상으로 사랑채 마루에서 별도의 상차림으로 식사를 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전통놀이 체험과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역사 창의체험 직무연수팀은 명재고택의 종손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2011년 12월 강당이 보물로 지정된 노강서원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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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방문때에는 보물에 걸맞게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해 감시카메라 시설과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이제 끝나고 말끔히 정리되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부순 담장도 새로이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노강서원[魯岡書院]은 1974년 9월 1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12월 30일 보물 제1746호로 지정된 곳으로 윤황(尹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김수항(金壽恒)의 발의로 1675년(숙종 원년)에 창건하였으며 1682년(숙종 8)에 ‘노강’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윤황의 위패를 모시다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를, 그후 1723년(경종 3)에는 명재(明齋) 윤증(尹拯)과 윤선거(尹宣擧)를 추가 배향하였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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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년(숙종 43) 사액현판이 철거되었다가 1722년(경종 2)에 회복되었고 1781년(정종 5)에 나라에서 중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보존되었던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라고 하는데 강당은 지붕의 형태가 2중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건물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지붕은 겹처마의 맞배지붕이지만 박공 아랫부분에 내림지붕을 덧붙여 둔 것이 특징입니다.
 
강당 중앙의 3칸이 대청으로 꾸며져 있고, 그 좌우에 각각 2칸 규모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고 툇마루 밑으로는 함실아궁이를 두고 있는데 위 사진의 마루 아래를 보면 좌 우로 하나씩 아궁이가 있는 게 보입니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일행은 종학당으로 향했습니다.
 
종학당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파평윤씨의 문중서당으로 글자 그대로 일가(宗) 사람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學) 집(堂)으로 인조 후반기에 윤증의 큰아버지인 윤순거(尹舜擧)가 세운 일종의 집안 학교로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이곳에서 중인들까지 교육을 했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까지 포용하던 파평 윤씨 노종윤문 집안의 학문 창달에의 깊은 뜻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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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립 연대는 최근 숭정 원년의 상량문이 발견되어 1628년경 童土 尹舜擧(1956-1688)가 건립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으며 16세기 중반 니산에 터를 잡은 파평윤씨 노종윤문이 불과 2-3세대 만에 일약 조선의 명문가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바로 종학당의 문중교육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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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노종윤문의 사립학교인 종학당에서 끝을 맺은 충남교육연수원 제2기 문화 창의체험 직무연수  2013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사계 김장생과 우암 송시열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여행'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 주관한 것으로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충남역사박물관이 충남교육연수원과 함께 충남에 산재한 기호유학 관련 역사문화자원의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의 교육에 임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하면서 이를 통해 자라는 학생들에게 되 알림되게하여 충청권 문화와 인물 그리고 유적에 대해 제대로 알려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하는 행사로 참여 중심의 체험식 연수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개인 역량 강화를 통해 창의적 체험 활동 지도 역량 강화로 학교에 대한 교육가족의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한 활동인데 프로그램을 함께 중등교사들은 입을 모아 "충남에 이렇게 훌륭한 인물과 가문이 있고, 조선시대를 이끈 유학의 문화적 유산들이 산재해 있는지 미처 몰랐다며 충남의 곳곳에 다양하게 자리한 고택과 그 고택 속에 살아 숨쉬는 기호유학과 유학자들의 실천적 삶의 모습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도 하며 반갑기도 하다며 이번 연수를 계기로 학생들에게 보다 폭 넓은 충남의 문화와 정신에 대한 긍지를 일깨워 훌륭한 충청인,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재목으로 자라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기여하겠다"고 했습니다.
 
직무연수를 끝 맺으며 충남역사박물관 오석민 관장은 함께 한 직원들을 격려하며 "다음에는 더욱 더 알찬 내용으로함께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로 수업 능력 및 창의적 체험활동 지도 능력 함양을 위한 '2013 역사ㆍ문화ㆍ문학 창의체험 직무연수'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이 났는데 연수에 참여한 모든 선생님들과 휴일조차 반납하고 충남의 바른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충남역사박물관 운영팀의 노고에 큰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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