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인생의 이모작을 생각하며

2013.01.07(월) 12:48:06 | 조연용 (이메일주소:whdydtnr71@naver.com
               	whdydtnr7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온 시간들이다. 나는 그동안 강단에 서길 꿈꾸며 한 길을 달려왔다. 물론 그 추진력은 詩를 향한 끊임없는 짝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좋은시를 쓰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쉬임 없이 달려오던 중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 길이 진정 내 길일까 잠시 머뭇거리는 시간이다.

제 2의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나는 문학을 벗어나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간혹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늦은 나이에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손영준(61) 명창이다. 손영준 선생은 연기군 조치원읍 원리에서 태어나 수협중앙회 본부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국악을 시작한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내가 손영준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주) 대흥에 사보기자로 근무할 때다. 매월 한 권의 잡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끙끙거리던 중에 마침 손영준 선생 인터뷰 기사를 넣으라는 대장의 지시가 하달되었다. 그렇게 가오동까지 찾아가 만난 손영준 선생. 한복이 아닌 캐주얼 차림이어서 그런지 첫인상은 국악인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이웃 아저씨 같은 분위기였다.

평범한 돌멩이 속에 들어있는 다이아몬드가 이런 것일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원석이 빛을 발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인생의 이모작을 향해 열정을 받쳐온 시간들. 그것은 사뭇 서편제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소리를 위해서 산에 들어가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수련을 한 이야기며, 최고의 스승을 찾아 대전에서 전주까지 쉼 없이 내달린 이야기까지

“어느 날 문득, 퇴직 후를 생각해보았는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에 정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우연히 판소리를 접한 이후로 판소리의 오묘한 맛과 향에 매료되었어요. 삶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는 판소리를 열창하다보면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녹아드는 것 같았지요”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서 열정을 불사르는 그의 나이는 환갑을 넘긴 나이가 아니나 이십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열정에 불꽃을 당긴 또 다른 이유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한다. 손영준 선생이 판소리를 막 시작할 무렵 서른도 안 된 딸의 인생에 불현듯 찾아든 불행. 예기치 못한 자식의 불행 앞에서 어느 부모가 태연할 수 있을까?

“딸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로써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지요. 그래서 결심한 것이 판소리를 통해 최고가 되는 경지를 딸에게 보여주면 우리 딸도 힘을 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제 마음을 헤아렸는지 딸애도 지금은 아픔을 딛고 자기 길을 찾아 학문의 길에 매진하고 있어요.”

자식 사랑만큼 더 큰 원동력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손영준 선생은 전주의 이일주 동초제 판소리 이사장, 송재영 전북도립창극단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시간만 나면 전주를 오르내리면서 판소리 수련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제14회 여수 진남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명창부문에 출전해 동초제 흥보가로 대상인 국회의장상을 수상하게 되었던 것.

보통 사람 같으면 감히 엄두내기도 어려웠을 제 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손영준 선생처럼 나도 새로운 인생의 이모작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도 문득 문득 내 목표의 9부 능선까지 달려와서 딴 길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갈등도 생긴다. 그래서 새해 벽두부터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큰 아이와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작은 아이를 불어 놓고 다짐을 했다.

“엄마가 이번에 학교를 휴학하고 너희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려고 하는데 너희들도 엄마 뜻에 따라서 열심히 해줄 수 있겠니?”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 두 녀석 반응이 서로 다르다. 큰 녀석은 엄마가 그렇게 해주면 고맙다는 대답이고 둘째 녀석은 엄마가 끝까지 공부를 해서 꼭 강단에 섰으면 좋겠단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내 공부와 내 꿈을 쫓아 방황하는 동안에 내 아이들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내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못 붙이는 것은 아닌가 싶은 자책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손영준 선생이었다면 이런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향기 좋은 차 한 잔 앞에 놓고 판소리 완창이라도 듣다보면 좋은 해답이 찾아질까? 아마도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문득 공익광고 cf문구가 떠 오른다. 학부모와 부모의 차이였던가.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가라 합니다.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지금 이 순간 이 공익광고의 문구를 되새기며 내 아이들의 교육과 내 꿈앞에서 다시금 운동화 끈을 고쳐매 보는 것이다.
 

조연용님의 다른 기사 보기

[조연용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244007297&ref=tn_tnmn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