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사리기. |
이번에 확인된 강당지는 금당지 북편 기단으로부터 16m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규모는 동서 46.8m, 남북 19.2m로 조사됐다.
이는 군수리사지의 강당지(45.45m×15.15m)나 금강사지 강당지(45.1m×19.1m), 능산리사지 강당지(37.4m×18.0m) 등 6세기대 백제사찰 강당지 중에는 가장 큰 규모다.
강당지의 기단은 동·서·북쪽이 30㎝ 내외의 할석을 쌓아 만들었으며, 남쪽은 다듬은 석재를 이용한 가구식 기단이다.
남편기단 바깥으로는 10㎝ 내외로 할석과 기와를 빽빽하게 세워 만든 ‘낙수받이시설’도 드러났는데, 이 같은 시설은 금당지 서편 건물지에서도 일부 확인된 바 있다.
▲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부여 왕흥사지 전경. |
연구소는 이번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강당지 및 회랑과 연결되는 동·서건물지의 위치와 규모, 그리고 주변 건물지의 분포 양상으로 볼 때 왕흥사는 백제 왕실사찰에 걸맞는 대규모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조사지역 내 장애물 및 주변 민가 철거를 완료한 후 백제 사찰 건물지 상부의 고려~조선시대 건물지들의 양상을 파악하고, 강당지 및 주변 건물지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해 왕흥사지의 전모를 밝힐 예정이다.
왕흥사지는 백제의 왕실사찰로 현재까지 목탑지와 금당지, 동·서 회랑지, 축대(동서석축) 및 진입로(남북석축) 등이 확인됐으며, 목탑지 심초부에서는 절대연대(577년)를 가진 ‘창왕명’ 사리기와 각종 공양구가 출토되어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