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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왕실의 종친으로 연산군에게 항거하다가 능지처참과 부관참시의 형을 당한 무풍군.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무풍군 사우에서 진행된 기신제.

충남 부여군 장암면 의자로 1211-8

2024.07.11(목) 12:26:17 | 충화댁 (이메일주소:och0290@hanmail.net
               	och029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무풍군 서호 이총 사우.(부여군 향토문화유산 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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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군 이총 사우는 사당, 묘문, 영모재, 정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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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군 서호 이총(1454~1504)은 조선 태종의 증손으로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159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 때 효수형을 받았다. 2년 후 1506년 (연산군 12년) 아버지 우산군과 형제들 6부자가 죽임을 당한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무풍군 이총을 배향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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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0일(음 6월5일)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무풍군 사우에서는 그를 기리는 문중 종친들이 모여 기신제(제향)를 올렸다. 
그는 김종직의 문인으로 길일손, 남효온 등의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과 친분이 깊었고 왕실의 종친임에 불구하고 왕(연산군) 직언을 일삼을 정도로 곧은 성품과 절개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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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모인 무풍군 종친들이 그의 곧은 성품과 고매한 학문을 기리는 제향에 참여하고 있다.
무풍군은 천성이 담박하여 물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에 대한 예절과 도리를 숭상하는 유학 정신이 사라져가는 21 세기에도 500여년 전에 살았던 조상의 행적을 숭앙하는 자손들이 모일만큼 무풍군이 남긴 향기는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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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군은 왕실의 종친으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당시 득세했던 훈구파의 부정과 비리에 저항하고 국정을 비판했다. 무풍군이 살았던 시대는 연산군의 재위했던 때였다. 왕실과 임금을 비판하는 종친이었던 무풍군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연산군은 그를 배신자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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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과 관련된 유물로는 교지 4점와 정려 현판 3점, 무풍군 이총이 직접 썼다는 간찰 1점이 있다.
장암 무풍군 이총 사우 및 유물 일괄은 무풍군 이총의 절의와 전주 이씨 문중의 친목을 엿볼 수 있으며, 보관된 유물은 연대가 오래되어 역사적,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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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다례. 차를 올리는 의식으로 무풍군의 고매한 인격과 절의를 높이 추앙하는 의식을 특별히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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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군은 안평대군에 비견할만한 능력이 있었으나 종친불사(종친은 벼슬을 할 수 없다)의 제한으로 예술적 재능만 발휘하였다. 시와 거문고에 능했고 거문고는 수천정 이정은과 쌍벽을 이룰 정도였다. 남효온은 <현금부>를 지어 무풍군의 예술 세계를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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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군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당시에는 독주하는훈구파를 사림파가 견제하는 팽팽한 긴장 관계의 정국이었다. 성급하게 시류에 말려들었다가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풍군처럼 아무것도 숨김이 없는 바른 도리를 지키는 성격은 화를 당할 수 밖는 정세에서 그가 살아날 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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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산군에 의해 종친임에도 불구하고 멸족에 가까운 참화를 당했다.
1506년(중종 원년) 중종반정 후에 신원되어 무풍도정에 추증되었다. 1705년(숙종 31)에 충신정려를 받고  충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738년(영조 14)에 무풍군에 가증되었으며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무풍군은 부여 출신이 아니지만 그의 후손들이 부여에 자리를 잡았고 그의 사당을 부여군 장암면에 건립해서 향토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무풍군이총사당
충남 부여군 장암면 의자로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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