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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부여 관북리 유적 -> 부소산성 -> 낙화암

부여 낙화암의 아름다운 석양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

2024.07.03(수) 21:45:00 | 보리 (이메일주소:chaehyeon0501@naver.com
               	chaehyeon050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여 낙화암의 석양

걸어서 부여 낙화암으로 가는 야행길

부여 관북리 유적 -> 부소산성 -> 낙화암
 

 낙화암 석양

▲ 낙화암 석양


낮의 더운 열기를 피해 조금이나마 시원한 기행을 꿈꾸며 저녁 바람을 느끼며 부여로 산뜻한 야행을 출발해보았습니다
.
 

 낙화암 석양

▲ 낙화암 석양


안녕하세요

부여는 백제의 수도였던 만큼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낮이 길어지니 그 덕분에 야간 기행이 쉬워진 요즘입니다.

어디로 가볼까 고민하던 끝에 친구와 함께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삼천궁녀의 마지막 역사를 담고 있는 낙화암 야간 기행을 떠나 보았습니다.
 

낙화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扶蘇山)에 위치

삼국시대 백제의 의자왕과 관련된 바위

 

낙화암

▲ 낙화암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궁성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가무주연(歌舞酒宴)의 향락을 일삼았다.

이러할 때 일찍이 백제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무열왕 및 김유신(金庾信) 등의 영주와 명신(名臣)이 나타나서 나라의 힘을 크게 길러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階伯)5천의 적은 군사로써 황산(黃山)벌에서 신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나당연합군의 수많은 군사가 일시에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해오자 왕은 그제야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해질 때를 기다려 왕자 효()를 데리고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나서 싸웠으나 성문은 부서져 열리고 말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죽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낙화암 [落花巖]
 

야행길을 위해 저녁을 든든히 먹었습니다.

초행길에 어떻게 낙화암에 도착할 수 있는지 지도를 검색을 해보니 백마강 구드레 나루터를 경유해서 낙화암까지 가는 길만 검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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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관북리 유적

▲ 부여 관북리 유적


블로그를 검색해서 걸어서 가는 길로 선택을 했습니다. 우선 눈 앞에 펼쳐진 관북리 유적의 잔디밭이 너무 좋아서 한바퀴 돌아 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기와 깐 시설

▲ 기와 깐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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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관북리 유적지에 기와 깐 시설이라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그리고 관북리 유적지를 돌다가 올라가는 길로 눈앞에 더 매력적인 장소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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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북리 유적에서 부소산성 가는 길

▲ 관북리 유적에서 부소산성 가는 길


부여 관북리 유적지에 기와 깐 시설을 지나 안으로 더 들어가니 오르막이 보이고 부소산성 입구가 점점 가까이 보입니다.

부소산성 입구 안내문

▲ 부소산성 입구 안내문


부소산성이라는 안내 비석이 보입니다
. 6시 이후라 무료로 입장입니다.
 

유네스코 유산 도시, 부여 부소산성

▲ 유네스코 유산 도시, 부여 부소산성


더 들어가 볼까요
.

사전 지식이 부족했던터라 역사책에서만 보았던 이름들이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산행길에서 밖으로 나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보입니다.

할아버지 이 안으로 들어가면 뭐가 있을까요?”

낙화암이 있지

 

부여 부소산성 지도

▲ 부여 부소산성 지도


나루터로 낙화암을 가려고 했는데 이 산길 끝에 있다고 합니다
.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들어가다가 왼쪽으로 가야 낙화암이 있으니 갈림길에서 혼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듯 말씀하십니다.

나중에 알았죠. 낙화암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낙화암 도착 방법 2가지

1. 백마강 나루터 배를 타고 -> 고란사 사찰을 지나 -> 낙화암

2. 관북리유적지 -> 부소산성 입구 -> 입장권을 끊어 걸어서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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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을 입장하니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나무들의 모습들에 친구와 감탄을 합니다. 100년 이상은 충분히 되어 보입니다.

 이정표

▲ 이정표


머리에 각인을 하고 오르막길을 가니 안내문도 보입니다
. 

내리막길 걸어가다 벌써 돌아갈 길이 걱정이 됩니다. 덥고 지치네요.

 고란사 낙화암 이정표

▲ 고란사 낙화암 이정표


다행히 중간 중간 보이는 이정표가 지친 마음에 조금만 가면 낙화암이 있다고 알려주며 힘을 넣어줍니다.

멀리서 태양이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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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 잘 맞추면 백마강에 떨어진 태양의 붉은 기운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힘을 내어 봅니다. 밝은 빛이 서서히 붉은 빛으로 변해갑니다.

장관이 펼쳐지리라는 기대에 나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답니다. 

부소산 입구부터 약 20분 정도 열심히 걸은 것 같네요.

드디어 백화정입니다.
 

백화정

▲ 백화정


바위 위에는 백화정
(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후궁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후궁이 궁녀로 와전되었고 이후 궁녀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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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삼천 궁녀 중 한 명이었다면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백마강을 바라보며 그 옛날 이 나라의 여자로 태어난 운명의 여인들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녀들도 누군가를 원망했을까요. 의자왕의 타락함을, 신라에서 쳐들어온 신라군을, 아니라면 백제에 태어난 야속한 운명을 탓했겠죠

저기 저 스러져가는 노을처럼 자취없이 스러져간 궁녀들을 위해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부디 인생 10회차 정도에는 당신들도 이 시대의 권리를 당당히 지니고 태어나라고

노을이 장관입니다.

백마강에 반사되는 저 반대편의 가로수길과 산의 모습이 장관으로 빛의 색을 뭐라 형언하기가 힘들고 감상하자 불어오는 바람도 이제 한낮의 뜨거운 기운을 털어내고 시원함만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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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확인하니
8시가 다 되어갑니다.
백마강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 그리고 궁녀들에 대해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니 밤이 너무 깊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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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밤 어떻게 다시 가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불빛들이 가는 길을 밝혀줍니다.



낙화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扶蘇山)에 위치 


낙화암 도착 방법 2가지

1. 백마강 나루터 배를 타고 -> 고란사 사찰을 지나 -> 낙화암

2. 관북리유적지 -> 부소산성 입구 -> 입장권을 끊어 걸어서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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