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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부여 ‘송국리유적’으로 상상해보는 청동기시대

충남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225-2

2024.02.18(일) 20:38:29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곧 길을 따라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를 것 같다. 바람도 잠잠한 날에 송국리유적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도 고즈넉하다.
 
송국리유적의 청동기시대를 만나는 입구
▲ 송국리유적의 청동기시대를 만나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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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부여지역의 선사시대 취락지역의 송국리유적.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는 1974년 돌널무덤이 발견되면서부터라고 한다. 또한 실제 거주하던 주민의 제보에 의해 석관묘에서 비파형 동검의 발견으로 국내외 커다란 반응을 받았다. 이듬해 발굴조사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등 4개 기관에 의해 25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대표유적이 되었으며 1976년 사적 제 24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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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신석기를 지나 청동기시대 수혈식주거지로 취락, 방어, 분묘시설을 두루 갖췄던 청동기 유적지의 송국리. 당시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농경과 정착생활로 마을끼리의 규모에서는 격차가 벌어지면서, 집단 내에서도 지배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의 차이가 나타났을 것이다. 발굴조사로 확인된 수많은 유구와 유물 중에서 주거지는 바닥중앙에 구덩이를 파고 양끝에 기둥을 세운 원형주거지와, 바닥이 좁고 몸통은 불룩하며 입구가 짧게 벌어진 토기가 특징적이다. 이는 각각 송국리형 주거지 그리고 생활 속에서 쓰인 것으로 보이는 토기를 ‘송국리형토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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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물지가 있는 곳은 큰 건물이 있던 터로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자리를 잡은 건물 터는 능선 꼭대기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1기씩이 있다. 두 건물 터 모두 양쪽에 12개씩 기둥을 맞세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건물 주위에서는 작은 기둥구멍이 빽빽하게 설치된 좁은 도량과 집터가 많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대형건물지로 알림표를 세운 곳에는 실제 종아리만한 길이의 말뚝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곳에서 바로 보이는 위의 구릉에는 군데군데 잘 가꿔진 개인묘지가 유적지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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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과 취락지구 사이에 ‘부여 송국리유적 발굴조사’의 펜스가 세워져 있고 그곳에 작업하는 트럭과 포클레인이 서 있다. 지금도 발굴중임을 말하고 있다. 마을전체규모는 파악되지 않았고 농경지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라서 송국리유적의 청동기시대 사회와 문화는 현재 완성형이 아니라고 한다. 집자리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청동도끼를 만든 거푸집은 당시 청동기의 주조가 이뤄졌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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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리유적지에는 송국리유적문화관의 전시실 운영으로 방문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곳은 본관의 교육실, 영상실, 자료실, 체험실과 전시실 송국리 토기복원실 주거지 모형 복원실 등의 시설이 있다. 전시실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식생과 토기가마와 저장구덩이, 취락시설과 화덕자리 등의 전시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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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자리에서 발견된 불에 탄 쌀은 벼농사의 수준을 말해주고, 벼 이삭을 따는 반달칼과 고기잡이 그물에 매다는 그물추, 사냥도구인 화살촉 등으로 생업의 증거를 알 수 있게 한다. 집자리 평면의 모양은 시기에 따라 형태와 전기 중기 후기별로 구조가 변화했다는 것을 보인다.입춘(立春)이 지나고 다음 절기인 우수, 경칩이 차례를 기다리는 지금. 송국리유적지 주변의 나무들은 이제 잔뜩 물이 올랐다. 봄꽃이 앞 다퉈 필 때는 봄소식과 함께 더 많은 관람객들이 송국리유적의 청동기시대를 찾으리라 기대된다. 아득한 선사시대의 생활을 상상해보는 교육차원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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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송국리선사취락지자료관
충남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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