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논산 개태사 고려 조선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사찰

고려시대 보물을 품은 태조 왕건의 개국 사찰

2023.12.21(목) 17:07:59 | 걷는 여행자 (이메일주소:dayee0@naver.com
               	dayee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중세 유럽이 천주교 성당의 문화라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불교문화로 대표되곤 합니다. 삼국시대 전래된 불교문화는 남북국시대, 고려 시대,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까지 선조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며 많은 유물과 문화를 완성하였습니다. 충남 논산에는 고려와 조선시대 나라의 흥망성쇠와 함께했던 사찰 개태사가 있습니다.

논산 연산면 천호산 천호봉
▲ 논산 연산면 천호산 천호봉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1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천호봉 아래 도로변으로 사찰 개태사가 안내됩니다.

계룡과 논산을 잇는 계백로와 호남선 개태사역 철로가 이어지네요. 도로와 인접하여서는 찾아가는 길도 편리합니다. 범종각과 천왕문을 대신하던 2층 누각 신종루 돌계단을 오르자마자 넓은 벌판에 개태사의 전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개태사는 태조 19년이었던 936년에 고려의 왕건이 후백제를 제압하고 세운 사찰입니다. 현재는 천호봉을 배경으로 대웅전과 산신각. 어진전, 극락대보전, 종무소, 요사채로 구성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현재의 사찰 구역에 더해 약 300m 정도 떨어진 마을의 개태사지까지로 훨씬 큰 규모였다합니다.

개태사 신종루
▲ 개태사 신종루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2

고려의 개국사찰은 고려 말기까지 거찰의 규모를 유지하였습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안동으로 피난하였던 공민왕은 개태사에 신하를 보내어 강화도 천도에 관한 점을 치게 하였는데 불길한 점쾌가 나와 천도 계획을 중지하였다 합니다. 그리고는 우왕과 창왕 때 연이은 왜구의 침략으로 고려도 개태사도 쇠락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며 숭유억불 정책으로 시나브로 퇴락의 길을 걷다가는 정여립의 난을 일으킨 세력들이 개태사로 모이며 역도의 소굴로 여겨져 폐사되었습니다.

태조 왕건 고려 개국사찰 개태사
▲ 태조 왕건 고려 개국사찰 개태사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3

어진전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진이 모셔졌습니다. 마침 역사탐방을 나온 수십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의 인솔하에 당시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잠시, 문밖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귀동냥합니다. 황산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왕검은 통일의 대업이 부처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이라 여겨 황산을 천호산으로 개명하고 개태사를 창건하였네요.
 
고려 시대 번창했던 영광의 시간을 지나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던 사찰은 중창되며 2008년 대한불교 조계종 호국 종찰 개태사로 거듭났고 2013년 어진전이 신축 완공되어 태조 왕건의 어진이 모셔집니다.

태조 왕건 어진이 모셔진 어진전
▲ 태조 왕건 어진이 모셔진 어진전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4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5

개태사에는 고려시대의 역사를 들려주는 3점의 문화재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절 앞마당에 모셔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개태사 오층석탑입니다. 원래는 북쪽 건물 터에 있었으나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1층의 탑 몸 아랫부분과 5층의 지붕돌 윗부분이 사라져 아랫부분인 기단부와 윗부분인 보주 등이 복원되었습니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 양식입니다. 남방불교의 전수자 연기조사께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16과가 봉안되어 있음이 안내됩니다. 5층석탑은 넓은 앞마당에 자리 잡아서는 특별한 날 탑돌이를 하기에도 좋았습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개태사 오층석탑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개태사 오층석탑

개태사 앞마당 감나무
▲ 개태사 앞마당 감나무

5층석탑과 나란히 한 감나무는 감도 잎도 모두 떨구고 앙상한 줄기만이 남았네요.
그 정 중앙으로 대웅보전이 있고 삼성각과 극락대보전이 ㄱ자 형태로 이어집니다. 비교적 근래에 새로이 중창된 사찰은 각각의 전각이 새 건물로 꽤 큰 규모입니다. 하늘을 향한 지붕 처마 끝의 풍경이 청아한 소리를 내고 유연한 곡선에서는 한옥 고건축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네요.

개태사 대웅전
▲ 개태사 대웅전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6

개태사 대웅전과 극락대보전
▲ 개태사 대웅전과 극락대보전

대들보 아래로 두 마리의 용이 포효하고 대웅전 실내에서는 스님의 불경소리도 계속됩니다. 혹시나 기도에 방해될까 아주 조심스럽게 사찰 안팎을 둘러보게 됩니다. 대웅전을 등지고 오른쪽 극락대보전에는 보물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모셔졌습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저절로 카메라 셔터가 누르게 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실내 촬영 금지를 알리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올여름 방문 당시 미쳐 문구를 확인하지 못하고는 사진을 담았었는데 뒤늦게 죄송해집니다.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7
개태사 극락대보전
▲ 개태사 극락대보전

보물 -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 보물 -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대웅전 왼쪽으로는 삼성각과 우주정이 있습니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 . 인도에서 부처님의 제자였던 나비존자를 모시는 독성각 .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각이 함께 모셔진 전각입니다. 우주정에는 개태사의 세 번째 문화재 철확이 있습니다.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8

개태사 우주전
▲ 개태사 우주전

철확은 보호각 옆으로 서 있는 사람이 아주 작게 보일 만큼 큰 규모입니다.
직경 289cm, 높이 96cm, enffp 910cm로 테두리 없는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높은 형태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는 장을 끓이던 솥이라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개태사가 폐허가 되면서 벌판에 방치되었는데 1887년 고종 24년에 대홍수로 약 4km 정도 하류로 떠내려가면서 일제 때 경성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가뭄 때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내리고 수해를 막기도 하고 풍년이 들게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개태사 철확
▲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개태사 철확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9

개태사 삼성각
▲ 개태사 삼성각

개태사는 뒤편으로는 천호산 천호봉 능선이 이어지고 앞쪽으로는 함지봉과 깃대봉이 있습니다. 그 사이로는 논산의 연산과 계룡을 잇는 도로와 기찻길이 길게 이어집니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지형적 특징은 고려 개국 당시에도 통일의 길목이 되었던 듯합니다.

고려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옛 사찰은 3점의 문화재를 통해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당시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3점의 유물과 함께 우리 곁에 찾았던 고려의 개국사찰 개태사는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로 잠시 머무르기에도 좋았습니다.

개태사 종무소
▲ 개태사 종무소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10

논산개태사고려조선의흥망성쇠를함께한사찰 11


논산 개태사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14-11

 

걷는 여행자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걷는 여행자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minsuk.lee.39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