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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충남 금산군 진산면 향교골마을 진산향교

2023.05.09(화) 02:31:43 | 젊은태양 (이메일주소:claudi00@naver.com
               	claudi0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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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향교가 있었던 지역은 정치적으로 그 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
향교는 관아가 있는 주요 지역마다 세운 공립교육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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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시대가 지나면서 중심지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지금 충남 금산군의 중심지는 금산군청 등의 주요 시설이 있는 금산읍인데, 금산읍에도 금산향교가 있습니다. 금산향교는 1684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입니다.(1997년 12월 23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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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까지 조선시대에는 금산군과 진산군이 모두 각 지역의 중심지였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금산군과 진산군을 병합하며 더 넓은 구역의 금산군이 됐다고 합니다.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금산군의 금산읍이 금산군의 중심지가 됐고, 진산군은 진산면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축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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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 국도 대둔산로 북쪽으로 나란히 달리는 교촌로를 따라가다 보면 진산향교 이정표가 있고, '교촌2리 향교골마을'이라고 새긴 마을명 석비가 있습니다.
시간은 오래 흘렀어도 향교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마을 이름에 남아서 마을 사람들 자긍심의 뿌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을명 석비 옆으로 교촌2리 마을 진입로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습니다.
지금은 홍살문의 붉은색이 많이 바랬는데, 이 홍살문에서 마을길을 따라 500m는 더 들어가야 진산향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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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소개에 의하면, 교촌리는 삼한시대 백제 진동현이었고, 신라 때에는 황산군 영현에 속했다가 고려 때에는 옥계부후속 진례현, 고려말 공양왕2년에는 고산현감이 있었고 조선 태조2년에는 만인산에 안태하고 진주라고 했다가 태종13년(1413)에 드디어 진산군 군내면 지곡이었다고 합니다.
그 상태로 오래 유지하다가 1755년(영조31년)에 진산군의 진산향교를 이 마을로 이전하면서 교동 향교골 또는 내교촌이 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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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따라 올라가니 진산향교의 외삼문이 보이고 길 오른쪽으로 주차장이 있습니다.
진산향교에서 행사가 열린다면 열 대 정도는 세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진산향교에서는 2월과 8월 첫째 정일(丁日)에 제향을 올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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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향교는 조선 건국 초기인 1398년 문묘를 건립할 때 지금의 진산중학교 자리에 창건했다고 합니다. 금산향교보다 수백 년 먼저 건립됐군요. 그런데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날은 금샨향교와 같은 날(1997년 12월 23일)입니다.
 
진산향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몇 차례 중보수를 거쳤고, 영조31년(1755)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가 정조4년(1780)에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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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 아래 주차장 위로 마을 비석을 모아놓았습니다.
비석의 생김새나 희미해진 글자를 보면 오래된 비석부터 최근의 비석까지 다양한 비석 10개가 넘게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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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희미해지긴 했는데 읽어보면, 대부분 군수 선정비와 거사비, 그리고 관찰사의 시대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영세불망비입니다.
최근에 세운 검은 석비는 진산향교 15, 16대 전교를 지낸 분의 공적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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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향교는 산기슭을 따라 세웠습니다.
지금도 교촌리 마을에서는 상당히 윗쪽에 향교가 있는데, 처음 이곳으로 이건했을 때에는 아마도 마을을 내려다보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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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을 지나 계단을 여러 개 올라가야 명륜당이 있습니다.
1780년에 고쳐 지은 이후, 동무, 서무와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별도의 교육 공간인 양사재, 창고의 역할을 하던 전사고가 1950년 6.25전쟁 때 훼손됐다고 합니다.
동무와 서무는 대성전에 모시지 않은 국내·외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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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으로 훼손된 명륜당은 1953년이 되어서야 보수했고, 1957년에는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보수하고 1968년에는 사무를 보는 전교실을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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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을 지나 계단을 수십 개 올라야 내삼문이 보이고 그 너머에 대성전이 있습니다.
진산향교 대성전에는 5성과 송조 2현, 동방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5성은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까지 다섯 분을 뜻하고, 송조 2현은 중국 송나라 때 정자와 주자 두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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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18현은 한반도의 학자 열 여덟 분으로, 설총, 최치원, 안향(안유), 정몽주, 김굉필, 이언적, 김인후,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조헌,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그리고 한 분이 더 있을텐데, 안내판에는 열 일곱 분의 이름만 있어서 궁금하게 합니다.
※ 빠진 한분의 이름은 '정여창'입니다.

국내외 선현을 많이 모신 것을 보니, 진산향교의 상징적인 위치가 일반 향교보다는 높은 위치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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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서무, 동재, 서재는 복원하지 못했는데, 그 건물까지 있었을 당시에는 명륜당 너머 공간에 건물이 가득했을 것으로 상상이 됩니다.
진산향교를 이처럼 산기슭을 따라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리고 지었으니 당시에도 상당히 쉽지 않은 공사였을 것입니다.

돌담 아래에 노란 봄꽃이 피어 있으니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진산향교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골목 한 귀퉁이에 수선화가 정갈하고 아름답게 피어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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