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의 큰 싸움터 공주시 ‘우금티’
진압하는 쪽은 일본 군대와 조선의 신식군대로 편성된 연합군이었지만, 동학농민군은 화승총이나 죽창으로 무장했다. 1만여 명의 농민군이 겨우 500여명만 남을 정도로 죽음을 무릎 쓰고 싸웠지만 화승총은 신식군대의 소총을 이길 수 없었다. 무자비한 싸움에 희생자가 너무 많았다. 그 원혼이 이곳에 서려 있다고 생각하니 모두 숙연해지는 마음이었다.
알림터에서는 당시의 배경과 시대상, 그리고 동학농민군의 활약 등이 지도와 사진, 영상 등을 통해서 더 실감나게 보고 들을 수 있게 했다. 우금티를 넘지 못한 동학농민군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무릎팍으로 내밀어도 나갈 수 있었는데, 주먹만 내질러도 나갈 수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영상은 보면서도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민들레홀씨영상이 있는 곳에서 해설하시는 분이 바닥에 표시된 곳에 서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번 불어보란다. 후~ 입 바람을 불자 새하얀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날라 갔다. 그 모습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웠던 영령들의 순수함이 민들레홀씨처럼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위령탑 근처를 걸으며 우리는 시비 앞에서 잠시 서서 ‘다시 살아나는 우금티’를 읽어보기도 했다.
가진 것도 없는 것이 / 가시만 날카롭다 말하지 말아요 / 알통 굵은 내 뿌리 근처 / 하얗게 쌓인 새 똥 무더기를 보아요 / 심장 뜨거운 단단한 새들 / 털끝 하나 흩뜨리지 않아요 /그 대에겐 시고 떫은 / 탱자에 지나지 않겠지만/헛된 욕심만 끌안고 사는 그대에겐 / 가시울타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 그대가 알겠어요 가슴 가득 / 자유의 새떼를 품는 뜻 / 피고름 그득한 세상을 향해 / 열매보다도 가시를 키우는 큰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