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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짐 - 어머니학교 6

이정록 시인의 서랍

2022.05.25(수) 22:18:5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기사 양반,
이걸 어쩐댜?
정거장에 짐 보따릴 놓고 탔네.

걱정 마유. 보기엔 노각 같아도
이 버스가 후진 전문이유.
담부턴 지발, 짐부터 실으셔유.

그러니께 나부터 타는 겨.
나만 한 짐짝이
어디 또 있간디?
그나저나,
의자를 몽땅
경로석으로 바꿔야겄슈.

영구차 끌듯이
고분고분하게 몰아.
한 사람이 한 사람이
다 고분이니께.

『어머니학교』 열림원


짐어머니학교6 1


오일장이나 마을회관 앞마당에 가면 삶의 말씀이 수북하다. 경우 없는 상황을 만나면, “그게, 말이여? 막걸리여? 어허. 고것이 말이여? 방귀여?”라는 농담이 예외 없이 바람벽을 친다. 여기에서 ‘말’은 사리에 적합한 것이고, ‘막걸리’와 ‘방귀’는 이치를 모르는 철없는 언행을 비꼬는 표현이다. 삶의 지혜가 충만한 이들은 막걸리와 방귀를 즐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우스개와 해학과 풍자를 뒤섞어서 고단한 삶을 웃음바다로 버무린다. 엿듣는 이는 웃음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만,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들은 표정 하나 흩뜨리지 않고 진지하다. 대화 상대가 더 이상 대구를 달 수 없을 때, 드디어 패자가 웃음보를 터뜨린다.  시골 버스 기사의 말솜씨가 고수다. 버스를 노각에 비유하는 문학적 수사와 후진 전문이라는 너스레가 일품이다. 짐짝과 경로석으로 말 펀치를 날리던 둘의 대화는 고분에서 막을 내린다. 여기에서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다. 말의 속내가 두껍게 뿌리내리고 삶의 철학이 하늘에 닿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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