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으로 유교가 전래되었을 때부터 원시적인 유교 교육기관이 존재했지만, 향교라는 이름과 형태로 설립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답니다.
중앙의 성균관과 함께 지방 유교 교육의 산실로, 중앙 정부의 관심 아래 지방 수령에 의해 운영이 지원되었습니다.
부여 향교는 부여읍 정림사지 박물관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고, 1700년대에 구교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872년에 수선재를 중수하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고 합니다.
향교 입구에는 어김없이 홍살문이 있으며 홍살문을 지나면 곧바로 부여 향교의 외삼문이 나옵니다.
홍살문 입구에는 하마비도 세워져 있네요.
말을 타고 하마비를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어야 한답니다.
성균관을 비롯한 각 지방의 문묘 밖 홍살문에 하마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수선재, 제관실, 수복실 등이 있습니다. 외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이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명륜당입니다.
보통은 외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측에 동재, 좌측에 서재가 있으면 동재와 서재 중간에 명륜당이 있는에 여기 부여 향교는 구조가 조금 특이하게 동재가 명륜당 뒤편 우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명륜당 뒤에 있는 동재인데요. 여기 부여 향교는 동재만 있고 서재는 안 보이네요.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동재만 만든 건지는 모르겠네요.
대성전으로 가는 계단과 내삼문입니다. 내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성전이 있습니다.
내삼문 입구 계단은 돌로 만든 것으로 참 운치 있어 보입니다. 다른 내삼문과는 달리 세 곳으로 나누고 협문을 두었네요. 대성전을 구경하러 가볼까요?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천장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 4 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답니다.
대성전 건물을 바라보고 좌측 담 밖에 있는 건물이 수선재입니다.
앞서 말한 동재 반대편에 서재가 없는데 이 수선재가 서재 기능을 하는 하는 곳인가 봅니다.
유생들이 생활하는 장소를 동재와 서재라고 하지요.
관리사 건물인데요. 건축한지 얼마 안 돼 보여서 그런지 새 건물입니다.
부여 향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전적은 판본 8종 8책과 사본 12종 13책이 있습니다. 정림사지와 함께 돌아보면 참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