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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계 김장생 세거지 사계고택 충남 계룡 여행

2022.02.08(화) 14:46:48 | 마패 (이메일주소:faron@hanmail.net
               	faron@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사무소에서 계룡시농업기술센터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두계은농재라고 불리는 사계고택.
조선의 유학자, 정치인, 문신으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사계 김장생이 말년에 귀항하여 살았던 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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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고택은 김장생선생이 고향에 내려와 살던 1602년에 건립한 건물이다.
현대 서예가인 여초 김응현이 쓴 사계고택 이라는 현판이 걸린 사립문을 지나면 사랑채인 은농재를 비롯하여 안채, 문간채, 광채, 부속채, 별당채, 영당, 행랑채 등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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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1990년 9월 27일 지정되었다가, 2013년 11월 1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0호로 재지정됐다.
 2,850m2의 대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랑채인 은농재는 원래는 초가지붕이었는데 현재는 기와지붕으로 고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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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은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인 광산부원군 김흥광의 후손이다.
부친인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황강 김계휘와 모친인 정부인 평산신씨 사이에서 1548년 7월 8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김호의 손에서 자랐으며 모친은 그가 10살이던 1558년에 세상을 떠나 논산군 연산 선산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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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은 1557년 예학자 구봉 송익필의 문하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사서, 육경, 근사록 등을 수학했다.
1567년(명종 22년)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로부터 이어지는 성리학통을 이은 서인의 당수이자 대학자인 율곡 이이의 문하에 들어 수학을 하면서 율곡 이이의 인정을 받아서 수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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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은 보지않고 학문에만 몰두하던 김장생은 1578년(선조 11년) 이조에서 “성경에 깊이 몰입하고 사색하여 옛 교훈을 독실하게 믿는다”는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서 영의정 홍섬과 좌의정 노수신이 상의하여 예종능인 창릉참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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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15년인 1582년 아버지 김계휘가 돌아가시자 김장생은 성리학 교리대로 초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며 시묘살이를 하면서 3년상을 지냈다.
상례와 제례를 가례대로 지내면서 스승인 송익필에게 서신을 보내 복제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고 연구하면서 김장생은 '상례비요'를 완성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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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인 완성한 상례비요는 신의경이 저술한 상례비요를 보충 삭제 교정한 책으로 증보상례비요라 부르기도 하는데 일반인이 쓰기에 편리하도록 서술한 상례와 제사에 관한 초보적 지침서로 서인은 물론 남인과 북인의 당원들도 참고하는 문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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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현감 재직 중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터지자 청양군 정산현을 지키다가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이 발발하면서 호조정랑으로 임명이 되어 명나라의 군량미 조달에 공을 세운것을 인정받아 종친부전부로 승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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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5년인 1613년 철원부사로 재직 당시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사유로 계축옥사가 일어났는데 김장생의 서제 경손과 평손이 연류되어 옥사하고 김장생도 연좌되었는데 심문 과정에서 박응서의 변론으로 무혐의로 풀려나서 연산으로 낙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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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 직후인 1623년(인조 1년) 3월 인조는 김장생을 사헌부장령에 임명하고 가마를 타고 상경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한성부에 올라와서 상소를 올려서 늙고 병이 있음을 들어 사양하고 반정공신들에게도 임금을 잘 보필하라는 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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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은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아들 김집과 함께 공주로 피란을 온 인조를 맞이하고 부세의 가혹함과 민심을 직언하며, 국가의 씀씀이를 줄일 것을 간언하였고 난이 평정되자 임금을 따라 상경하여 상의원정에 임명되고 사헌부 집의에 제수되었으나 휴가 상소를 올리고 고향에 연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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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은 강화도로 피신을 가면서 김장생을 양호 호소사로 임명하였는데 김장생은 팔십노구를 이끌고 충청도와 전라도에 격문을 보내 식량을 모으고 의병을 모집하여 공주로 내려온 세자를 만나 이를 인계하고 강화도로 가서 왕을 만나 호소사를 사직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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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에게 강론을 하면서 연산에서 머물던 김장생은 1631년 5월 발병하였으나 요양하지 않고 학문을 강론하다가 8월 3일 병세가 위중해져 맏아들인 김집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고 그의 장례식에는 1천 명의 인파가 몰렸고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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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은 1657년(효종 9년)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원공의 시호를 받았는데. ‘문’은 도덕을 널리 안다는 의미이고 ‘원’은 의를 중심으로 덕을 행했다 라는 뜻을 의미 하며 1688년(숙종 14년) 성균관 문묘에 종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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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고택을 중심으로 왕대산으로 이어지는 사계솔바람길은 사계 선생의 정신과 뜻인 어질고 바른 마음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산책 할수 있는 코스로 사계고택을 출발하여 왕대산·모원재·왕대산정상- 쉼터바위- e편한세상아파트/더?아파트·사계고택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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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고택이 자리잡은 두계은농재 사거리 맞은편에는 수령 400년 높이 21m 나무둘레 4m에 이르는 느릅나무가 계룡시 보호수 2005-2호 지정되어 보호 되고 있는데 사계 김장생 세거지인 사계고택을 지켜서듯 굽어보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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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고택
두계은농재
충남 계룡시 두마면 사계로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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