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에는 김대건 신부 생가가 있는 솔뫼성지와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한국 천주교회사를 위한 비망기를 작성한 신리성지 그리고 천주교 신앙공동체였던 원머리성지가 자리 잡고 있다.
내포지역 삽교천과 무한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 전파는 1785년 한양 명례방에서 발생한 을사 추조 적발사건을 계기로 고향에 내려온 이존창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에 자리 잡은 원머리에는 1780년대 후반 천주교 전파로 신자들이 생기면서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천주교 전파 초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원머리 신앙공동체는 신분과 남녀의 차별을 극복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재물을 나누어 주는 민중 종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66년 병인박해부터 1868년까지 홍주 16명 해미 2명 수원 2명 등 20명의 원머리 출신 순교자들이 교수형과 생매장 순교를 하였다.
수원에서 1868년 순교한 박선진[세례명 마르코]과 박태진[세례명 마티아]의 시신이 원머리에 묻혔고, 밀양 박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 묘를 관리하면서 현장을 지킬 수 있었다.
병인박해 치명자 증언록에 의하면 서덕행이 두 분의 시신을 찾아 원머리로 운구하여 기족에게 넘겼고 박마르코의 매제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원머리 순교성지는 간척지가 형성되기 전에는 물이 들어오면 육지가 섬이 되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교우촌 한가운데 치명자를 모실 수 있었고 교우촌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천주교 박해로 괴멸되다시피 했던 원머리 공동체는 박씨 양씨 마씨 한씨 조씨 성의 신자들이 되돌아와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면서 1876년 원머리 공소가 설립되었다.
충청도 전담 선교사 두세 신부의 1885년 활동보고서에 의하면 원머리 78명 새터 72명 등의 신자 숫자가 말해주듯 공동체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원머리 공동체는 천주교 신자들이 마을의 주축을 이루기 시작해서 신평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이루었고 1975년 신평 성당이 설립될 때 중심 역할을 하였다.
원머리성지
충남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 233
신평성당은 설립된 지 25년 만에 준건축사사무소 이상문의 설계와 성룡 종합건설의 시공으로 1999년 9월에 착공하여 2000년 9월 새로운 건물로 준공되었다.
신축된 신평성당 앞마당에는 1868년에 순교한 박태진(마디아)과 박선진(말구)의 거룩한 얼을 높이 기리는 표석이 2007년 6월 15일에 세워졌다.
박선진·박태진의 묘소는 1989년 신평 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가 20년 후인 2009년에 다시 원머리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 박태진 마지아 기념비가 세워졌다.
신평성당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지아의 순교 내용과 1989년 신평성당내로 이장했다가 2009년 원머리성지 순교장 현양을 위해 재 이장하면서 기념비를 세운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신평성당 홈페이지에는 신평성당을 출발하는 해안순례길 1코스, 원머리성지에서 출발하는 도보순례 2코스(순례8경길), 신평성당에서 출발하는 도보순례 3코스(나뭇잎길) 등 세 개 코스가 올라와 있다.
신평성당
주소: 충남 당진시 신평면 신평길 63
전화: 041-363-6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