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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죽음을 알아야 삶을 알지”

삶과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연명의료결정제도’

2021.02.24(수) 09:33:50 | 당진시대 (이메일주소:d911112@naver.com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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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기관으로 지정된 당진웰다잉문화연구회(회장 유정순, 이하 웰다잉연구회)로 전화가 왔다. 자신을 태안에서 사는 28세라고 소개한 이 여성은 당장 당진으로 가겠다며, 저녁 6시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당시 겨울이었고 심지어 이 여성은 태안에서 당진까지 택시를 타고 와야만 했다. 내일 오라는 말에 그는 “급하다”며 그날 바로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폐암 말기 환자였다. 바로 다음날 입원을 앞둔 그는 인터넷으로 찾고 찾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는 곳이 당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추운 겨울밤 당진웰다잉연구회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며 “부모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
서산에서 70대 한 남성 어르신이 방문했다. 태안의 여성과는 달리 자식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다며, 의향서를 작성했다. 혹시나 미국에 사는 아들이 반대할까 걱정된다며 급한 마음에 당진까지 찾아왔다고 전했다.

-3.
앞이 보이지 않는 한 남성이 웰다잉연구회의 문을 두드렸다. 순성에 홀로 거주하는 그는 TV 뉴스로 본인이 사전에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미리 준비해 편히 가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의향서를 작성했다.

-4.
유정순 회장과 동갑이었던 당시 72세의 여성의 딸로부터 연락이 왔다. 말기암을 앓고 있던 엄마가 내일이면 호스피스 병동에 가야 한다며, 편히 보낼 수 있도록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엄마가 움직일 수 없는데, 유 회장이 방문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유 회장은 “그동안 오랜 치료로 고통받아 그 엄마는 너무나 지쳐 보이는 상태였다”며 “의향서에 서명하는 동안 딸은 엄마 옆에서 계속 울었다”고 말했다.

-5.
웰다잉연구회 회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는 유재석 씨는 3개월 전 아버지를 떠나 보냈다. 삶의 마지막에서 연명 치료 중단 의향서를 작성한 아버지의 뜻을 가족들은 받아들였다. 그는 “아버지의 연명치료를 중단한 뒤 한동안 슬픔으로 우울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죽음을 알아야 삶을 아는 것 아니겠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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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장례선양단에서 활동하는 나기복 씨는 지금까지 187명의 국가유공자의 장례를 치렀다. 이 과정을 보며 죽음에 대해 초월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장기기증 신청에 이어 의향서까지 모두 작성했다. 그의 지갑 안에는 두 확인증이 나란히 꽂혀 있다. 나 씨는 “내 숙명대로 살다가 떠나고 싶어 의향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7.
웰다잉 강사 이상자 씨는 달랐다. 여행길에 오른 그는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매들로부터 연명 치료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누나는?”이라고 묻는 말에 망설임 없이 “치료를 다 하자”고 답했다. 연명 치료는 정말 현실이었다. 이 씨는 “병상에 누운 엄마의 몸은 부어 있고, 심지어 수액도 몸이 받아들이질 못해 팔 주변이 온통 젖어 있었다”며 “엄마도 힘들었을 것이고, 보고 있는 가족들도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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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제도란?
이밖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당진웰다잉연구회를 통해 1500여 명이 의향서를 작성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국민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지난 2009년, 평소 본인의 연명치료거부 의사에 근거한 가족의 요청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한 ‘김할머니 사건’이 알려지며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법으로 제정됐다. 여기서 연명의료 시술이란 심폐소생술과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혈압상승제 투여 등을 말한다.

전국 400여 개소를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다. 19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에서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 후 상담을 거쳐야만 작성 가능하다. 당진에는 당진웰다잉문화연구회에서만 가능하다.

“죽음과 삶은 종이 앞 뒷장 차이”
웰다잉연구회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접수뿐 아니라 웰다잉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이 활동을 하며 그들 역시도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 박희경 씨는 “웰다잉 교육을 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며 “죽음을 늘 옆에 두니 삶이 더 진지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죽음을 알면 오늘 주어진 하루가 더욱 감사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며 “아침에 눈을 떠서 고맙고 저녁에 눈을 감을 수 있어 감사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죽음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단다. 죽음을 터부시했던 예전에는 심청이 죽는 대목이 있는 심청가조차 연초나 정월대보름에는 부정탄다고 부르지 않았단다. 강의하기 전만 해도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어르신들이 직접 강의를 요청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까지 관심을 둔다고. 웰다잉연구회 회원인 김보영 씨는 “죽음과 삶은 구별되는 것이 아닌 종이 앞장과 뒷장 같은 것”이라며 “죽음을 잘 준비하며 살면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정순 회장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과 더불어 생명 문화 존중을 위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에요.”(유재석)
“맞아요.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러니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이상자)

QnA
Q.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꼭 본인이 작성해야 하나요?
A. 반드시 본인이 작성해야 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건강할 때 스스로 연명의료에 대해 결정하는 법정 서식이므로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에서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 후 직접 작성할 수 있습니다.

Q.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보관하려면 비용이 드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보관하는 데에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Q. 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나요? 외국인도 작성할 수 있나요?
A.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19세 이상의 성인이면 모두 작성 가능합니다. 외국인도 여권 또는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하고 작성할 수 있습니다.

Q. 사망하는 모든 환자가 이 법에 적용을 받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응급상황에서의 응급환자, 집에서 사망하는 환자 등은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정을 받고,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이행하고자 하는 환자가 아닌 경우라면 의료법과 응급의료법 등 관련법에 의한 일반적 원칙을 따르면 됩니다.

Q.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으로 안락사와 존엄사가 합법화된 것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이 법으로 규정하는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이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치료효과 없이 임종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을 의미합니다.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시술을 시행하거나 물과 영양, 산소의 단순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연명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사 2인의 의학적 판단이 선행돼야 합니다. 단순히 환자 스스로 임종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연명의료 행위를 유보 또는 중단을 할 수 없습니다.

>> 당진웰다잉문화연구회는
■운영시간 : 평일 ■위치 : 서부로 40(당진시보건소 옆) ■문의 : 356-1355(오전 10시~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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