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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겨레의 별' 순국 100주기를 맞으며

모교 공주 영명학당 앞에서 열린 유관순열사 순국추모제

2020.09.30(수) 17:46:27 | 임중선 (이메일주소:dsllew87@hanmail.net
               	dsllew8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엊그제 9월 28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 날과 이번 달 내내 가슴 한 켠에 숙연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날이 무슨 날이었는지 모르시는 분들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중요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날은 유관순열사가 순국한 지 100주기 되는 날이다.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감 중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해 딱 100년 전 이 날 1920년 9월 28일에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옥사, 순국하셨다. 

먼저 열사의 고난을 애도하고, 애국애족 정신에 감사드리며, 떠나신 그 길 편히 영면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묵념 드린다.
   
추모제가 열린 공주시 3.1중앙공원.
▲추모제가 열린 공주시 3.1중앙공원
 
열사의 동상 앞에서
▲열사의 동상 앞에서 열사의 후배들인 영명고 학생들이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추모제에 참석하신 독립유공자 가족분들.
▲추모제에 참석하신 독립유공자 가족분들
 
이날 공주시는 김정섭 시장님, 이종운 시의회 의장님과 여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사의 학창 시절 추억이 깃든 모교 영명학당(현재 영명 중고등학교) 앞 3.1중앙공원에서 추모제를 숙엄하게 거행하였다.
 
추모제는 열사의 고향인 충남 천안에서도 열렸지만 공주에서 개최된 건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열사와 공주의 소중한 인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독립의 꽃’이 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공주에 있어서다.
 
국민의례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례가 진행되고 있다

기미독립운동가 제창.
▲기미독립운동가 제창

묵념의 시간.
▲묵념의 시간
 
유관순열사는 1902년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을 전후해 천안 매봉교회에서 미국에서 온 사애리시 선교사를 만난 뒤 1914년 공주 영명학당 입학해 2년간 보통과 과정을 수학했다. 이후 1916년 서울 이화학당에 교비생으로 편입하여 남대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병천면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주도했다.
 
이날 추모제는 김정섭 시장을 비롯해 열사의 학교 후배인 영명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념사와 추모사, 헌화 및 분향 추모의 글 낭독,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의 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제 공식행사 이후에는 영명중·고등학교에서 공주제일교회까지 유관순거리 걷기행사를 통해 유 열사의 숭고한 희생과 나라사랑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는 대한민국의 푸른 하늘아래, 열사가 의연하게 서 있다.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는 대한민국의 푸른 하늘 아래, 열사가 의연하게 서 있다
 
김정섭 공주시장이 헌화 분향하고 있다.
▲김정섭 공주시장이 헌화·분향하고 있다
 
공주시의원들이 분향하고 있다.
▲공주시의원들이 분향하고 있다
 
보훈 관계자의 분향.
▲보훈 관계자 분향
 
호국 보훈 유가족분들의 분향.
▲호국 보훈 유가족분들의 분향
 
시는 유 열사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이번 추모제에 앞서 연극 ‘공주에서 핀 독립의 꽃 유관순’을 선보였으며, 오는 10월 8일에는 ‘유관순열사와 공주항일독립운동 학술대회’를 통해 유관순열사와 공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또, 유관순 열사와 사애리시 선교사의 특별한 인연을 담은 책자를 올해 안에 펴낼 계획이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 사애리시 여사가 등장한다.
 
열사의 짧은 생애, 그 앞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명의 인물이 있는데 그 중 한명이 바로 이 사애리시 여사다. 미국 선교사 사애리시 여사는 영명학당에서 열사를 만나 수양딸로 삼으며 항일독립운동을 위한 희생정신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열사를 키워냈고, 이화학당에 편입하도록 도와준 그녀는 대한민국 ‘근대 여성교육의 어머니’로 활약했다. 정부는 지난 3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는 시낭송을 하고있다.
▲유관순열사를 추모하는 시낭송을 하고 있다
 
행사가 열린 3.1중앙공원 한켠에 활짝 핀 무궁화. 왼쪽 저편에 열사의 동상이 보인다.
▲행사가 열린 3.1중앙공원 한 켠에 활짝 핀 무궁화, 왼쪽 저편에 열사의 동상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명, 3.1운동 후 일제에 끌려간 열사가 고문 끝에 순국하자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른 김현경(1897~1986)열사가 유관순 열사의 소중한 독립운동 동반자다. 김 열사도 영명여학교를 졸업했다. 교사로 활동 중 3.1운동을 주도한 그녀는 공주형무소에 수감된 유 열사를 옥중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집행유예로 먼저 출옥한 김 열사는 유 열사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기 전까지 옥바라지도 했다.
  
공주시는 열사의 순국 100주기를 맞는 올해 많은 행사를 준비했다.
 
추모제 외에 지난 9월 25일 공주문예회관에서 연극 ‘공주에서 핀 독립의 꽃 유관순’을 공연했다. 10월 8일에는 ‘유 열사와 공주항일독립운동 학술대회’를 열고 기념책자도 발간한다. 그리고 공주에는 항일유적과 인물이 많으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고증과 발굴을 통해 공주지역의 독립운동사를 크게 부각시켜 나갈 것이라고 한다. 특히 작년에 공주시는 천안시 등과 힘을 합쳐 독립장 품격 등급 문제로 논란이 일었던 유 열사의 훈격 문제를 해결해, 1등급(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추모제 행사후 참석자들이 열사의 학창시절 다녔던 유관순 거리를 가면서 설명을 듣고 있다.
▲추모제 행사후 참석자들이 열사의 학창시절 다녔던 유관순거리를 가면서 설명을 듣고 있다
 
이동중에도
▲이동 중에도 '대한민국 만세!'는 기본
 
영명고 교정에 세워진 유관순-사애리시 여사 동상앞에서 설명을 듣고있다.
▲영명고 교정에 세워진 유관순-사애리시 여사 동상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영명고에 세워진 유관순(맨 오른쪽) 열사 등의 흉상
▲영명고에 세워진 유관순(맨 오른쪽)열사의 흉상과 상징탑, 가운데 조병옥 박사와 왼쪽 황인식 교장

겨레의 꽃, 유관순열사가 순국하기 전에 남긴 유언을 아래 적어 본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 팔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잊을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그리고 천안 유관순열사생가 오른쪽 비문에 있는데, 유관순열사 전기 ‘타오르는 별’의 작가 박화성님이 쓴 글 중 이런 구절이 있다.
 
  크고 빛난 우리의 별(유관순)은 이 땅 위에서 빛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그 별은 이 하늘에 떠 있어서 영원한 겨레의 별이 된 것이다.
 
우리 영원히 겨레의 꽃, 겨레의 별 유관순 열사를 잊지 말고 흠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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