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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얼마나 깨어지고 다듬어져야 작품이 될까

추억 돋는 공주 계룡산도예촌에서

2020.09.16(수) 11:56:28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덧 9월 중순이 지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코로나19 확진자 검색으로 시작했던 날들이 시나브로 멈추고 그저 일상을 조심하면서 산다. 지난 12일 토요일, 이슬비가 지나가듯 바닥을 적시나 싶더니 비는 그치고 안개가 아스라이 퍼졌다. 몽롱한 듯 안개와 구름 한가운데 계룡산도예촌은 별세계처럼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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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꽃과 어울린 핑크대문
 
점심 지나 동네 한 바퀴 도는 시간쯤에 나와 남편은 계룡산도예촌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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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촌 공방

“그때보다는 왠지 매끄럽고 세련된 느낌이야. 카페도 있네. 예전엔 손글씨로 쓴 나무이정표가 있었는데….”

계룡산도예촌은 초행길이 아니었다. 십여 년이 훨씬 넘은 과거 언저리 어느 시간에 지인의 차를 타고 그 집 아이와 부부, 우리 부부와 아이들 이렇게 일곱 사람이 이 길을 걸었던 터였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시간에 맞춰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일시에 한 공간으로 모였다. 진행자의 설명과 움직임을 눈귀로 쫓으며 도자기 체험에 열중하던 아이들, 그러는 사이 어른들은 전시된 도자기를 감상했다. 
 
판매를 위한 생활 속 도자기라고 해도, 수중에 있는 돈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내 기준에서는 ‘비싼 그릇’이었다. 투박한 질감에 꽃이나 물고기, 넝쿨 같은 그림이 그려진 다양한 분청사기. 몇 번이나 손에 들었다 놨다 망설이던 그릇은 결국 아쉽게 다시 놓아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지인이 사발 두 개를 건넸다.

“여기다 막걸리 따라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아서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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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남은 머그컵과 막걸리 사발로 애용하는 철화분청사기
 
그때가 어제인 양 생생한데, 검붉은 빛깔의 질박한 표면에 넝쿨무늬가 그려져 있는 사발에 남편은 막걸리를 종종 따른다. 두 개 중 하나는 언제 깨졌는지 기억도 없다. 그 사발에 처음 젖빛 막걸리나 맑은 동동주를 담아 마시던 즐거운 시간들이 꽤 흘렀다. 도자기 체험장에서 호기심으로 두 눈을 빛내던 아이들은 이제 세상의 어떤 것에 두 눈을 밝혀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우리는 지금 젊지도 늙지도 않은 ‘라떼’를 경계하는 나이를 산다. 
 
철화분청사기는 일반적으로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중간 시기인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까지 공주 계룡산 학봉리 일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일대의 산화철이 철화분청사기의 적절했던 재료였을 것이리라. 살면서 이사를 자주 다니는 동안 경기도 이천에 잠시 살기도 했다. 도자기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내가 사는 근처 마을에서 열리는 전국 규모의 축제이다 보니 이웃들 가는 길에 묻어 구경을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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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가 있는 계룡산문화도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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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도자문화관
 
전시를 하는 곳곳에 도자기를 만든 작가들이 직접 소비자들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여 담소를 즐기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전시된 감상용 도자기보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품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저렴한’ 생활자기를 찾고 있었다. 그때 생활한복을 입은 내 또래 여성이 웃음 띤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때 자기와 같은 반이었다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당장에 그 친구 이름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활짝 웃으면 하얀 이가 먼저 보이던 조용한 아이, 키가 얼추 비슷해 한 번은 짝꿍이었다가 내가 앉은 앞이거나 뒤 어디쯤엔가 늘 가까이 있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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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도자예술촌 전경
  
친구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단다. 같은 일을 하는 남편과 이천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도자기가 한때 흥하던 시기엔 작업실 규모를 더 넓히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친구가 만든 접시 두 개와 머그컵 두 개를 구입했다. 꼭 10년 전이다. 접시와 머그컵 1개는 어찌어찌 깨어지고 머그컵 1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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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터 가기 전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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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빛깔 조형물에 붙은 또 다른 작품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다
  
‘도자예술촌’ 글이 보이는 왼쪽으로 오르다 보니 조형물로 세워 놓은 곳에 녹슨 철빛깔이 강렬하다. 오래된 작품들이 시간이 흘러 떨어진 곳도 있다. 전통 가마는 황토로 만들었는지 가마터를 보는 동안 자꾸 대형 소보루식빵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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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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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터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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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루식빵 같은 황토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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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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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전시관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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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조각과 작품의 만날 수 없는 간격
  
철화분청사기 이동전시관 옆에는 작품이 되기에 앞서 깨어진, 혹은 아예 깨뜨려야 할 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그 위에 푸른 칡넝쿨이 천진스럽게 자줏빛 꽃을 피웠다. 전시관 안에 있는 작품들은 유리로 된 정돈된 공간에서 자기를 탄생시킨 저자의 설명과 이름으로 놓여 있다. 부서진 조각과 작품의 간격, 그 간격의 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감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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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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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제막식을 준비하는 건지 도예촌 주변 지명들이 표시되어 있다 
 
예술촌은 이름과 분위기에 걸맞게 예능의 감각이 곳곳에 드러났다.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지긴 해도 계룡산이 주는 웅장한 기운으로 그런 요소마저 자연스럽다. 계룡산도자예술촌 글이 있는 오른쪽엔 비닐로 씌워진 조형물이 있다. 어쩌면 18일(금) 오전 11시에 있을 철화분청사기 조형물제막식에 쓰일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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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도예촌 행사 펼침막
 
‘계룡산도예촌 공예주간 프로그램’에서는 오는 18일(금)부터 27일(일)까지 열흘간의 행사를 진행한다. 제막식과 함께 ‘계룡산분청에 멋을 담다’전으로 2020 공예주간 기념 철화분청 과거와 현재전이 열리고 행사기간 내에 공방갤러리를 오픈한다. 분청사기 판매와 도자기물레체험, 철화분청만들기 체험전도 열린다.

500년 전 도자기가 만들어지던 계룡산 깊은 산골 아래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던 백제도공들의 땀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추억 돋는 이곳, 코로나19로 조심스러운 일상에서 탁 트인 도예촌을 와서 느낀 것만으로도 심신의 맑은 기운이 통한다. 돌아가는 내내 안개와 구름이 우리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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