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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금은 코로나의 땅, 빼앗긴 들에 산수유가 왔다

부여군 충화면에 핀 산수유꽃

2020.03.12(목) 22:37:25 | 충화댁 (이메일주소:och0290@hanmail.net
               	och029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른아른 살랑살랑 꽃바람을 타고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회색 하늘이 걷힌 푸른 하늘을 바탕화면으로 꽃망울이 노랗게 터지는 산수유꽃이 봄을 데리고 왔다. 코로나19가 빼앗아 간 들판에 봄만 왔다. 온 세상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어도 산수유꽃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우리 동네는 산수유꽃 가로수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마을이 시작되는 초입부터 양쪽 갓길에 산수유 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다. 산수유로 유명한 남녘의 어느 마을처럼 축제를 열 만큼은 아니지만 해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적어도 ‘산수유꽃 피는 봄에는 놀러오세요’라고 말치레도 할 만큼은 된다. 제때에 봄꽃 구경하러 가지 못한 사람들을 설레게 하기에는 충분한 산수유꽃길이 우리 마을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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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마을에 부임했던 어떤 면장님이 산수유 열매를 가공해서 마을소득 사업으로 연결해 보겠다는 취지로 심은 것이었다. 마을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대해서 고민을 한 결과 산수유를 심은 것이었다. 5급 이상 공무원들은 한 마을에서 1년 이상 머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산수유 나무에 관심을 가지는 면장과 그렇지 않은 면장들 사이에서 산수유는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세월 속을 지나왔다.
 
무엇 한 가지 내놓을 만한 특산품도 문화 유적도 역사적 인물도 없는 우리 마을에 봄이 오면 마을길이 온통 산수유꽃 천지가 되어 볼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봄꽃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아우성치듯 군락으로 피어나 사람들에게 눈호강을 하게 해준다. 역병이 창궐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숨고 꽃들은 살갗을 비집고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꽃들마저 사람들을 버리는 세상이 오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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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의 꽃말이 ‘영원불멸의 사랑’이라고 하기에 무심하게 검색창에 쳐봤더니 자동 검색어로 요즘 가장 핫 하게 언급되는 특정 종교의 교주의 이름이 나온다. 하필이면 산수유꽃과 연관 검색어로 뜨는 그의 이름마저 불편하게 느껴진다. 몇년 전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났던 특정 종교와 그 교주의 모습도 데쟈뷰로 떠오른다.
 
그들의 모습은 대중들을 종교라는 집단 최면으로 빠지게 할 만큼의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대로 늙어가는 전형적인 노인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열매를 장복하면 늙지 않는다는 하여 신선의 열매라고 하는 산수유 열매조차 먹지 못한 것 같은, 경노당의 평범한 노인네들 같은 그들은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나무는 세월을 더할수록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세월이 흐를수록 향기와 연륜이 느껴지는 사람들보다 영혼이 노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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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죽어 있던 것 같은 가지에서 신비롭게 꽃부터 피워내는 산수유의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 때문에 ‘영원불멸의 사랑’이라는 꽃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영원불멸의 삶과 사랑을 얻게 해주겠다고 대중을 현혹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산수유 꽃말이 오버랩되는 것조차 불경스럽다.
 
우리 마을은 산수유로 이름난 곳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려 사진을 찍어서 SNS에 공유할 곳 정도는 된다. 우리 마을이 고향인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에 산수유꽃 사진이 올라오면 그래도 봄이 왔나보다 했다.
 
올해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은 상황이라 전국에 꽃이 피고 있으나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으러 다니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80년대 서울 한복판에서 학생운동하던 친구들이나 써먹던 그 말을 밀레니엄도 훌쩍 넘은 산골 오지마을 산수유꽃 나무 아래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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