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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청백리의 상징 맹사성, 그가 살았던 맹씨행단

2016.02.17(수) 23:05:01 | 길자(吉子) (이메일주소:azafarm@naver.com
               	azafarm@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청백리의상징맹사성그가살았던맹씨행단 1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충남 아산시 배방면에 위치한 맹씨행단입니다. 우선 '맹씨행단'이란 명칭에 대해 뜻 풀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 맹씨행단은 고려말 충신인 최영 장군이 살다가 그의 손주사위인 맹희도에게 물려준 집으로 맹희도는 조선 세종 때 정승을 지냈던 맹사성의 부친입니다. '행단'이라 함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 집'을 말하는 것으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 맹씨 가문의 집'이란 뜻으로 '맹씨행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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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맹씨행단에 살았던 맹사성은 고려시대 우왕 12년인 1386년 문과에 급제,  조선왕조 세종 1년 이조판서와 함께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관직을 거쳐 1435년 좌의정을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맹사성은 조선 전기 황희와 함께 조선초 문화 창달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성품이 청백하고 검소하여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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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행단에 들어서면 우선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할 만큼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맹사성이 심었다고 전해지며 수령은 640년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겨울철이라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지만 노란 은행잎이 무성했다면 무척이나 아름다웠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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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다보면 눈에 띄는 지형지물을 배경으로 여러해 동안 같은 포즈로 사진을 남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러한 사진을 찍을 최적의 장소가 바로 이 커다란 은행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같은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텨왔으니 앞으로의 세월도 그러할 것 같다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가족들과 함께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보기로 아내와 약속을 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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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행단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工)’자형의 본채 건물은 정면이 네 칸이고 측면은 세 칸으로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평면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고려말과 조선초의 민가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맹씨고택을 통해 민가 건축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천 되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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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고택을 통해 다양한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기둥 상부 부분이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은 기둥 상부 결구 형태를 '공포'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으면 '주심포',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으면 '다포'라 불립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주심포가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다포로 발전하였는데 맹씨고택은 이러한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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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고택은 그동안 여러차례 수리를 거쳐왔지만 세월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언제 달았는지 모르는 문 손잡이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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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맹씨행단에는 21대 종손인 맹건식 어르신(위 사진)께서 살고 계십니다. 고택 아래에 위치한 별채(관리소)에서 살고 계셨는데요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고택에서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고택의 역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말씀을 하시는 동안 옛 생각에 잠기시며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는 모습이 고택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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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고택 위쪽으로는 '세덕사'라는 사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맹사성 위패를 비롯하여 두문동 72인에 속하는 맹유, 맹희도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매년 10월 10일이면 이 세분을 모시는 제향을 올립니다.. '고불맹사성선생 탄신숭모제'라 불리는 이 행사에는 신창맹씨 대종회장을 비롯하여 인근 향교의 전교와 아산시장, 아산시의회의장 등이 참석하여 맹씨행단을 가득 메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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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덕사는 보수공사 중입니다. 기와를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새로운 기와로 단장한 후 어떤 모습일지 그 모습을 보러 후에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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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까래 위에 흙을 얹기 위해 요즘에는 '개판'이라는 판자를 덮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세덕사는 살대를 엮어 개판을 대신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문화재이다보니 원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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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맹씨행단에 들어서면 큰 볼거리는 없습니다. 넓은 공터에 맹사성 고택과 세덕사 그리고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전부이죠. 하지만 얼마만큼의 그 곳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그냥 빈집으로만 보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고려말과 조선초의 민가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 입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문화재에 대해 관심 갖고 바라보시는건 어떨까요? 아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재미난 이야기들이 숨어있을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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