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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서원에서 충효예의 길을 묻다

충남 최초 서원인 공주 충현서원 ‘우리동네 문화사랑방’ 이야기

2015.12.03(목) 17:04:41 | 이기현 (이메일주소:jhdksh8173ahj@hanmail.net
               	jhdksh8173ahj@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최근 몇 년전부터 국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유명 서원들을 선별해 ‘우리동네 문화사랑방’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서원이란 조선시대 지방에서 덕망이 높은 유학자를 모신후 제사 지내고, 지방 양반과 백성들의 학문적 교육을 시켜주기 위한 사립 교육 기관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주세봉이 세운 백운동서원입니다. 이 서원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러 보존 유지되고 있고, 그 의미가 또한 크기에 정부에서 서원을 선별해 현대적으로 주민통합과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자 문화사랑방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문화사랑방에서는 대표적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절과 충효교육은 물론 선인들의 후학양성의 뜻을 기리고 가르침으로써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라 국가 동량이 되도록 하자는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충남에서는 어느곳이 ‘우리동네 문화사랑방’으로 선정돼 운영중일까요?
바로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잡고 있는 충현서원입니다.
특히 충현서원은 충청남도 각 시군에 있는 30여개 서원 중 충남 최초의 서원(1581년 선조 14년)이기도 하며 사액서원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사액서원이란 서원이 국가의 공인을 받아 서원명 현판(懸板)과 노비, 그리고 서적 등을 하사받았던 서원을 뜻합니다.
 
그후 명실공히 16세기 후반 지역의 대표적인 강학장소로 자리매김하였고, 17세기에 이르러 조선 후기 사림계를 주도할 저명한 교육 기관으로 발전하였습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지만 1925년 일제 강점기 지역 유림들의 노력으로 중건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소중한 충남의 문화유산입니다.
 
이런 유서깊은 충현서원이 정부의 우리동네 문화사랑방에 선정되어 지금까지 충청남도 관내 많은 초중고등학생들은 물론 성인들까지 초청해 역사문화연구와 함께 전통학문 및 충효예절 아카데미, 강좌 등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업은 올해뿐 만 아니라 앞으로도 해마다 지속적으로 펼쳐 도내의 청소년들이 바르고 올곧은 국가관과 충효예의 참 뜻을 배우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도민리포터가 얼마전 충현서원에 취재를 가서 서원의 서민식 이사장님을 직접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하면서 충청남도 최초의 서원이자, 당시 국가의 공인을 받은 사액서원인 이곳을 렌즈에 담아왔습니다.
 

서원에서충효예의길을묻다 1


서민식 이사장님께서 충현서원 사우(본전)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저기 보이는 준령은 계룡산의 한 줄기인 고청봉입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이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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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은 1581년 고청 서기에 의해 공암서원이 설립된 이후 서원 사적비와 우암 송시열 충향기 비석(추배비)을 비롯해 각종 편액에는 서원을 중수한 역사와 출입 문인들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이 비석이 서원 정문 앞 왼쪽에 세워져 있는 유암 송시열 선생의 추모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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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비석 역시 정문 앞 오른쪽의 서원 사적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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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의 내용이 오늘날의 세대를 위해 친절하게 한글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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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향교, 그리고 조선시대 각종 관아에서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하마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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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식 이사장님께서 본전 안에 배향돼 있는 유학자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충현서원에는 주벽에 주부자 영정 봉안, 동벽에 석탄 이존오, 동주 성제원, 중봉 조헌,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계시고 서벽에 한재 이목, 고청 서기,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선생이 배향돼 모셔지고 있습니다. 서원 내 사우 본전 1동, 사적비, 송시열선생 추배비, 주자 영정 9점 등은 충남도지정문화재로 관리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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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에 배향된 첫 번째 인물 우암 송시열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명신으로 1635년(인조 13)에 봉림대군(후의 효종)의 사부가 되어 효종과 깊은 유대를 맺었습니다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일체의 관직을 사양하고 낙향하여 10여 년간 학문에만 몰두하였으며, 1649년에 효종이 즉위하자 기용되어 북벌의 핵심 인물이 되었죠. 송시열은 1713년(숙종 39) 충현서원뿐만 아니라 이후 전국적으로 약 70개소에 이르는 서원에 제향 되었는데, 이는 서원의 제향인물로서 단연 으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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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주자인데요, 중국 남송 말기의 인물입니다. 신유학의 새로운 학풍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이를 집대성한 주자학을 이룩하였고 특히 사서를 중심으로 새롭게 신유학의 학문 체계를 세웠는데, 이는 조선 후기 유학의 큰 뿌리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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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입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이자 대사헌 김계휘의 아들로 송익필과 율곡 이이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예학에 정통하여 우리나라 예학의 토대로 확립하였습니다. 인조반정 이후에는 서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컸고 아들 김집을 비롯하여 그의 문하에 송시열과 송준길, 이유태 등 당대의 비중 높은 명사가 즐비하게 배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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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 조헌! 아, 그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가 숙여집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하시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신 충신이죠. 그런데 이분이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다는 사실, 진정 더 놀랍습니다.
1567년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고 관직에 물러나서는 옥천에서 후학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자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금산전투를 지휘하다 전사하신 것입니다.
 
현재 서원에서는 지역내 청소년들을 위해 서예 교실 운영, 기초 유학 아카데미, 고전 강독, 화원화 강좌, 전통놀이 교실, 서원 음악회, 인문 마당, 충현서원 아카데미, 1인 1색 화요사랑방, 구석 구석 서원을 깨워라, 문인화 강좌, 생기발랄 서원교실, 충현 문화재 등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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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유학 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들이 한반도 지도 탁본체험을 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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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들은 ‘충현서원 아카데미’에 참석해 “충남 최초의 서원을 아시나요” 강의시간을 맞아 서원의 역사와 의미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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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녀 어른들도 참여해 문인화 강좌를 듣고 열심히 붓 터치를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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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엄마아빠와 함께 생기발랄 서원교실 시간에 만들기 체험을 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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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강사님으로부터 충현서원 아카데미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의 경청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이런 강좌를 통해 충현서원에 보관하고 있는 유물들을 살펴보며 충남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충현서원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충현서원의 의미를 다시금 깨달으며 자부심도 갖게 됩니다.
 
충현서원을 처음 세운 고청 서기 선생은 50세 무렵부터 이곳 공암에 정착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 년을 머무르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서원을 세우기 전 성리학을 배우기 위해 직접 중국 명나라에 세 번이나 들어가 자료와 서적을 모으고, 여러 학자들과 함께 학문에 심취하였다고 하네요.
그렇게 만들어진 충현서원 주변 계룡산 국립공원에는 유서 깊은 옛 사찰인 동학사와 갑사가 있고, 계룡산 도예촌도 가까이 있어 전통 문화를 손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충현서원은 지형 상으로 계룡산에서 뻗어 나와 북진하여 금강과 만나는 두 주맥의 사이를 흐르는 용수천의 중간 지점 공암리에 위치하고 있어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사우 뒤편에 고청봉이 감싸고 있는 지세입니다.
 

서원에서충효예의길을묻다 19


마지막으로 서민식 이사장님께서 “서원은 전통적으로 지방문화 발달에 크게 기여하고, 학문을 연마할 기회가 적었던 향리에서 후학을 키우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의 장이었습니다”라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도 옛 전통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형성할수 있도록 노력하는 충현서원의 우리동네 문화사랑방 아카데미 활동, 내년 내후년에도 꾸준히 할 것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시고 홍보도 잘 해주세요”라고 당부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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