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무르익어가는 계절에 순교자들의 숨결과 흔적을 찾아서 신리성지에 있는 성다블뤼 주교관(신리 62-3)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1886년에 공주 황새 바위에서 순교하신 성 성자선 토마스 생가였으나 프랑스인 성다블뤼 주교님이 1866년 오천 갈매못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셨던 곳입니다. 안 주교님이 21년동안 거주하며 한국 카톨릭 교회사를 집필하신 곳으로 성다블뤼 주교관이며 조선 제 5대 교구청입니다. 다블뤼주교는 이곳에 머물며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병오박해에서 순교한 사도들의 행적을 조사하여 한국 카톨릭 교회사를 만드셨습니다.
성 성자선 토마스 생가 앞에 서 있는 동상은 성다블뤼동상입니다. 성다블뤼 안주교님께서 이곳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하셨고 조선의 순교사 비망록을 기록하셨습니다. 이 집은 원래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였지만 제 5대 성 다블뤼 주교의 비밀성당이자 주교관이었다고 합니다. 병인박해(1886년)로 다블뤼 주교님이 순교한 후에 신리 교우촌이 파괴되면서 이 집도 주인을 잃었습니다. 1972년에 이 지역 교우들이 모금을 통해 이 집을 매수하여 천주교회에 헌납하였습니다.
이 집 대들보에는 갸경 21년 1816년에 상량하였으며 1954년과 1984년에 축성과 수리를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4년에 복원 수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나무기둥, 주춧돌, 문지방, 디딤돌이 옛날 그대로여서 성인들이 살던 그 시대의 숨결과 흔적이 살아 있는 곳 입니다.
옛날 문풍지가 달린 방문을 열어보니 그 시대에 다블뤼주교님이 교우촌을 방문할 때 이복 다녔던 우리나라 전통의상과 모자가 단정히 걸려있습니다. 등잔불에 불을 밝히고 밤늦도록 우리나라 천주교인들을 위해 성서를 번역하고 글을 쓰며 한줄기 신앙의 빛을 전파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로 이 지역 교우들이 많은 순교자가 되었지만 꿋꿋이 복음의 생명을 이어간 천주교 박해 후의 사적지입니다. 특히 이곳 출신의 성 성자선 토마스는 1866년 공주 관아에서 자기 살점을 물어 뜯어가며 신앙을 증거한 분입니다. 특히 성인 4분이 붙잡힌 거더리집(지금의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노라" 는 말씀에 가슴에 진한 감동이 몰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