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관 선생 생가지의 장승
▲ 생가지 표지석
▲ 고수관 선생 생가지의 작은 기념공원
▲ 안내도
▲ 생가지에 새워진 기념비
▲ 생가터 광장
▲ 들꽃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는 생가지 공원
고수관 선생은 판소리를 익혀 명창이 되었는데 뒤에 염계달 선생의 영향을 받아 흥보가를 잘 불렀고 권삼득, 모흥갑, 염계달, 송흥록, 신만엽 등과 함께 서울에서 공연활동을 벌여 이른바 대한민국 판소리 8명창으로 꼽히는 분이십니다.
순조 때 이들의 활동상황중 흔히 네 명창의 이름 앞글자 성씨를 따서 고송염모(?宋廉牟)라 칭할 정도였다 합니다.
특히 춘향가 가운데 자진사랑가는 요즘 말로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으로써 고수관 선생의 창법과 음률을 그대로 전해서 지금도 쓰고 있는 것입니다.
▲ 자진사랑가 노래비
그 1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어허 둥둥 내 사랑아. (중략) 어허 둥둥 내 사랑 내 간간이로구나.”
사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판소리에 기여한 공로가 너무 크신데 우리가 잘 알아주지도 못하여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동진 선생조차도 생전에 “반드시 고수관 선생의 기념비를 세워드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께서 이렇게 큰 인물로 그 업적을 추앙받지 못하는 까닭은 아마도 당시에 이런 예능 분야는 광대라 하여 백정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인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당신의 고향에서마저 철저하게 잊혀졌던 것입니다.
▲ 생가지 한켠에서 선생의 업적을 기리며...
그 때문에 남아 있는 기록이나 유물도 없고, 단지 고씨라는 성씨만 알 수 있을 뿐 어느 파(派)누구의 몇 대손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채 고수관 선생과 같은 시대에 산 고향마을 사람의 말들만 토막처럼 전해 내려와 이렇게 전설처럼 남아 회자될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현실을 애석하게 여긴 향토의 관심있는 분들과 고 박동진 선생의 유지를 받아 이렇게 작으나마 생가지 복원과 공원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충청남도가 낳은 당대 걸출한 판소리 명창, 고수관 선생을 다같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수관 선생 생가지 기념공원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29-5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