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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특명 "조선 총독부를 폭파하라"

청양군 항일 독립운동가 윤병구 선생 기적비를 찾아

2013.08.05(월) 00:01:10 | 이기현 (이메일주소:jhdksh8173ahj@hanmail.net
               	jhdksh8173ahj@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8월입니다. 더위와 지루한 장마, 그리고 열대야만 기승을 부려도 그러려니 하면서 참겠는데 요즘 역사를 모르는 망나니 같은 날강도 왜국 때문에 정말 짜증이 제대로 치솟습니다. 일본이라는 이름조차 말하기 싫군요. 그냥 왜국이라 하겠습니다.

 아베 정권이 8.15 광복절에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겠다는 둥, 왜국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며 정식으로 등재한다는 둥 온갖 쥐 같은 수작을 계속 부리고 있습니다. 다른 시점도 아닌 8.15 광복절을 앞두고 그러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머리에서 라면이 끓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평정심을 잃지 말고, 그리고 냉정하게 우리 과거를 되돌아 보고 다시는 지난날 같은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지금 일본의 저같은 망동도 따지고 보면 여전히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척 자존심 상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저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하는 날이 올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게 우리의 의무이자 자세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굳건한 마음가짐과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광복절을 기다리는 이 8월에 우린 먼저, 지난날 저들에게 빼앗긴 이 땅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싸운 분들을 다시 추모하며 그 뜻을 기리는 시간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저희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 493-3번지 도로가에는 조선 땅을 짓밟고 있던 총독부를 폭파하겠다는 원대한 독립의지를 가지고 활동했던 항일 독립투사의 뜻을 기리는 기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저기 도로가에 윤병구 선생 기적비와 안내문이 보입니다. 조금 외로워 보여서 너무 죄송했습니다.

▲ 저기 도로가에 윤병구 선생 기적비와 안내문이 보입니다. 조금 외로워 보여서 너무 죄송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윤병구(1893~1931) 선생의 기적비입니다.

 윤병구 선생께서는 이곳 청양군 청남면에서 태어나셨는데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독립운동을 제대로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만주로 건너가 의열단 단원이 되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의열단 단원이 되신 직후 여러 활동을 하다가 총독부를 폭파 할 계획을 세웠지만 군자금이 부족했습니다.
   선생은 의열단에서 유석현, 김지섭 등 동지들과 함께 당시 총독부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고 동양척식회사와 총독부, 조선은행 등을 폭파할 목적으로 자금조달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1922년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군자금 마련의 임무를 띠고 서울에 잠입합니다.

 선생은 그해 12월 23일, 김지섭 유석현 두 동지와 함께 서울 무교동에 사는 총독부 판사 백윤화를 방문해 군자금 5만원을 요구하였는데 2천원의 자금을 약속받았습니다.

윤병구 선생의 조선총독부 폭파 계힉 등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순국하셨다는 약사를 기록해 놓은 안내문.

▲ 윤병구 선생의 조선총독부 폭파 계힉 등 항일독립운동 전개중 옥중에서 순국하셨다는 약사를 기록해 놓은 안내문.


 당시 백윤화는 비록 일본의 총독부의 판사였지만 그도 조선인이기에 마음 속으로는 독립군을 지원해 줄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달 25일 밤 유석현 동지와 같이 약속된 군자금을 받기 위해 백윤화의 집을 찾아갔으나 백윤화의 신고로 미리 잠복해 있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애초에 왜국 앞잡이를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불의의 체포를 당하게 되고, 결국 조선 총독부 폭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여기서 당시 항일 독립투쟁을 했던 의열단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많은 독립운동이 전개 되었는데 그 중에 무장 항일투쟁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 애국단과 약산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의 기적비

▲ 선생의 기적비가 있는 전경

 

기적비 비몸 앞 정면

▲ 기적비 비몸 앞 정면


 한인 애국단은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진행하였던 말이 필요 없던 조직이었고  의열단 역시 국내외에서 다양한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투척 의거와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등이라 합니다.

 어쨌든 윤병구 선생은 당시 이렇게 안타깝게 체포가 되어 일제에 의해 중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악명 높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하셨습니다.
 어떤 비열한 사람들은 일제에 협조한 대가로 금전이나 직위를 이용해 일신의 영달을 꾀해 오늘날까지 자기 땅 찾겠다며 설치고, 반면 윤병구 선생 같은 분들은 가족들 버리고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감옥에서 순절하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금세 답이 나옵니다.

비몸 뒤에 새겨진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기

▲ 비몸 뒤에 새겨진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기

 

비몸 옆부분의 항일투쟁기 기록문

▲ 비몸 옆부분의 항일투쟁기 기록문



 그 후 정부에서는 선생의 애국 독립운동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현재 청남면 중산리 도로변에는 선생의 순국선열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청양의 김경태 선생과 함께 서대문형무소 순국선열 90위 명단에 포함돼 있으십니다.

  대한민국이 8.15 광복을 맞아 국권을 회복하고 꾸준히 나라살림을 일구어 온 오는날,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 등 따습게 잠을 잘수 있는 모든 것.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당신의 고결한 희생 덕분입니다.

 선생의 기적비 사진을 찍은 후 주변의 풀도 좀 뽑고 나오면서 다시 한번 더 머리숙여 감사의 묵념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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