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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아름다운 우리 산에 산악회 리본을 달지 말자

자연훼손과 보기에 너무나 흉함

2013.03.31(일) 11:47:21 | 이기현 (이메일주소:jhdksh8173ahj@hanmail.net
               	jhdksh8173ahj@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날씨가 꾸물꾸물, 비도 살짝 뿌린 어제, 등산 배낭을 챙겼다. 그동안 게으름을 피우다가 산을 잊고 지냈는데 더 이상 미루고 나태해지다 보면 그나마 유일하게 건강 챙기던 일마저 포기하고 사는꼴이 될거 같아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선 것이다.

 “아빠랑 산에 가자”
 아내는 친정에 가서 없고, 고등학생 딸내미는 수행평가 과제 하느라 정신 없고. 결국 만만한 중학생 아들녀석에게 급제안.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아이가 느닷없는 아빠의 말에 어물어물 어쩔줄 몰라 한다.

 “뭐해 임마. 옷 입지 않고... 너, 집에 있어봤자 스마트폰이나 만지고 앉아 있을거 아냐. 아빠랑 산에 가서 맑은 바람이나 쐬자”

 아이는 썩 내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아빠의 포스(?)에 눌려 추리닝으로 갈아 입는다.

 황사도 좀 있는것 같아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주고 집 밖으로 나섰다. 목적지는 칠갑산. 
 버스를 타고 한티재 쪽으로 갔다. 칠갑광장 한티재 칠갑문으로 가기 위해 대치터널 입구 칠갑주차장에서 걷기 시작해 칠갑광장까지 간다. 30분 정도 걸린다. 칠갑광장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정도가 걸리는데 산책코스가 완만해 아이와 함께 걷기에 적당하기 때문에 이 코스를 택했다.

 산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모들, 운동겸 산책하듯 나오신 노인들, 날씨는 흐려도 바깥바람이 좋아 산으로 나선 친구들과 수다를 즐기는 아줌마들과 땀 흘리며 허벅지 근육 키우듯 빠르게 오르는 남성들이 보였다.

 원래 우리 칠갑산은 오래전부터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장관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99계곡이 팔을 벌리듯 펼쳐져 있고 까치 냇물, 냉천 계곡과 맑은 호수물을 자랑하는 천장호수, 그리고 천년고찰인 장곡사가 있어서 도민들뿐만 아니라 산을 즐겨 찾는 전국의 등사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매일 버스와 제 아빠의 승용차만 타고 다니면서 그나마 걷는 길이라고 해봤자 죄다 시커먼 아스팔트였던게 전부였던 아들 녀석에게도 산에 오르는게 싫지는 않을듯 싶었다.

 “너는... 여자 친구 없냐?”
 산에 오르면서 공부 얘기하면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아빠일까 싶어 흥미로운(?) 질문을 툭 던졌더니 이녀석이 무척 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이 벌개진다.

“하하하. 너 여친 있구나. 왜 아빠한테 얘기 안했어?”
“헤헤헤. 뭐... 근데 엄마는 아시는데...”
 “그~으래? 엄마는 왜 아빠한테 이야기 안해줬을까?”

 아이에게 여친이 있다는 말에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올라갔다. 예상 못한 주제 덕분에 아이도 산에 오르는 힘겨움을 하나도 안 느끼는 듯 했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아름다운우리산에산악회리본을달지말자 1

 

 등산로를 따라 양쪽에 있는 나뭇가지에 뭔가 보였다. 한두개가 아니라 꽤 많은 것이 보였다. 어? 리본이었다.

 빨간색, 노란색, 흰색. 가까이 다가가 보니 “OO산악회”라는 문구와 함께 어김없이 적혀 있는 전화번호. 뻔한 리본이었다. 산악회 클럽들이 자기네 산악회 홍보하며 거기에 가입하라는 내용이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금이야 법적으로 처벌을 해서인지 몰라도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산에 있는 바윗돌에 “아무개 OO산에 오르다”는 식의 문구를 파 놓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흰색 페인트 칠을 한건 지울수 있으니 그나마 애교였는데 바윗돌에 망치와 징을 가져다가 자기 이름을 새겼으니.

 그러던게 지금은 그건 사라지고 대신 빨주노초파남보 수많은 리본에 산악회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주렁주렁 매달아 놨다. 여간 보기 흉한게 아니다.

 “이게 다 뭐람...쯧쯧”

 나뭇가지에 매달려 펄럭이던 리본을 하나 뚝 떼어내며 혼잣말을 하자 아이가 옆으로 다가와 다른 리본을 떼어냈다.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칠갑산은 물론이고 영험이 높다는 계룡산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무당들이 누군가의 대입시를 붙게 해 달라는 굿판과 100일기도를 올려 산이 여간 망가지는게 아니라는 소식을 듣곤 했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자라나는 나뭇가지에 펄럭이는 헝겊쪼가리를 붙여 놓은 모양새를 보니 너무나 보기 흉했다.

 “아빠도 이런 산악회 가입하지 그러세요?”
 아직 철 모르는 아이는 리본을 그렇게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다는게 잘못된 행동인지 모르는듯 오히려 내게 산악회에 가입하라고 권한다. 참 내... 아이에게도 뭐라 변명하기 부끄러웠다.

 산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품고 있으면서 늘 함께 한다. 말 없이 우릴 지켜주는 고마운 산이다. 산악회 욕심만 앞세워 나뭇가지에 리본을 매다는 몰지각한 행동은 그만 자제하자. 내 집 거실에 심어 둔 예쁜 조경수에 어느 산악회 회원들이 나타나 리본을 주렁주렁 매단다면 가만 있겠는가.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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