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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질병은 천 가지도 넘지만 건강은 단 하나뿐이다

2013.02.22(금) 01:08:28 | 오명희 (이메일주소:omh1229@hanmail.net
               	omh12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설 명절 후 처음 맞은 휴일, 남편과 나는 몇 년 째 공주 모 노인시설에 머물고 있는 시고모님과 고모부님께 문안인사를 하러 갔다. 오후 3시경,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요양원에 도착하자 먼저 깊은 정적을 가르며 상큼한 바람이 달려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치 마중이라도 나온 듯 말이다.

그곳은 다른 노인 요양시설과는 달리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산기슭에 위치되어 있었다. 주변 환경이 무척이나 쾌적할 뿐더러 한적했다. 또한 그 시설 출입구 상단에 입소자들의 명단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게 나열해 놓아 금방 내 고모님과 고모부님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고모님과 고모부님은 처형과 제부 사이로 그 시설에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한 지붕 아래 그것도 바로 옆방에서 지내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고모님은 고모부님을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겼다. 당신 제부인 고모부님이 중증 치매로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기 때문이다. 날마다 한 지붕 아래서 지내는 고모님조차 몰라보니 오랜만에 보는 남편과 나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나이가 한참 위인 고모님보다 고모부님이 건강이 더 안 좋아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모님은 달랐다. 고모부님과 남편 또한 나를 정확히 알아보는 등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의사소통은 물론 당신 스스로 걸어 다니며 당신이 묵고 있는 방까지 안내를 했다. 이따금 치매 증세를 보이긴 했지만 그곳에 함께 머물고 있는 고모부님에 비하면 경증 환자였던 것이다.

그날 남편과 내가 고모님과 고모부님이 머물고 있는 요양원을 찾았을 땐 어르신들의 자유시간인 듯 복도 소파 곳곳에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뵈어서일까. 여러 어르신들 중 유독 부쩍 야윈 반백의 낯설어 뵈는 할머니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고모님이었다. 슬하에 사남매를 둔 고모님은 청상과부로 일생을 바쳐 쌀가게를 운영했는데 그 당당함은 이제는 간곳이 없었다. 넘어지면 부서질 듯 한없이 나약하기만 했다.  

한국 속담에 나그네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즉 세월의 무상함을 뜻하는 것이다. 남편과 내가 오는지 가는지 멍하기 휠체어에 앉아 있던 고모부님의 모습이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측은지심에서일까. 한때는 훤칠한 외모와 호탕한 성격으로 당신 처조카인 남편을 귀히 여겨주시곤 했는데 이제는 다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한없이 초라하기만 한 중증 환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양의 어느 학자의 말씀에 의하면 '질병은 천 가지도 넘지만 건강은 단 하나뿐이다.' 라고 한다. 그렇다. 그 병명도 다양하게 요양원에 입소해 있는 어르신들 질병도 가지가지였다.  마치 날개를 잃고 새장에 갇혀있는 어미 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처럼 이 방 저 방 기웃대기도  했다. 가엾게도 이따금 피붙이들을 기다리는 등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게 아닌가.

천 가지 질병은 다 가졌어도 단 한 가지 건강을 못 가진 어르신들, 그곳에서 두어 시간이 되도록 고모님과 고모부님과 함께 하고 귀가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그러나 모처럼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만은 한없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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