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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추억의 '눈깔사탕'을 기억하시나요

먹을것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2012.03.13(화) | 권혁조 (이메일주소:rnjsgurwh19@hanmail.net
               	rnjsgurwh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대학씩이나 다니는 큰놈들이 아침부터 반찬타령을 하길래 슬쩍 눈을 흘겨줬다. 먹을것이 넘쳐나는 시절에 반찬타령이라니... 우리네가 옛날에 살전것과는 너무나 딴판이라 오히려 부족함을 모르는 아이들.

 그러더니 급기야는 한낮에 군것질을 하고 싶다며 피자를 시켜먹자고 제엄마에게 조르기까지 한다. 아내더러 수입밀가루로 만든 피자를 사주느니 차라리 고구마를 찌어 주라고 부탁을 해서 결국 그날은 고구마로 즐거운 간식을 대신했다.

 고구마를 먹으며 문득, 먹을게 참으로 궁했던 그 옛날 십리사탕(알사탕 또는 눈깔사탕)의 추억이 떠올랐다.

  십리사탕. 이걸 요즘 40대 이전 세대는 알까. 눈깔사탕이라고도 했던 그건 어렵고 가난하던 70년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군것질거리였다. 지금 돈으로 치자면야 1개에 100원 안팎의 그냥 알사탕이었지만 그마저도 쉽게 얻어먹기 어려운 빈곤한 시절이었다. 한번 입속에 넣으면 10리를 갈동안 아껴서 먹을수 있다 하여 십리사탕이라 불리웠고, 또한 사람의 눈만큼 크고 동그랗다 하여 눈깔사탕이라고도 했다. 

 어쩌다 사탕 하나 생기면 그걸 입에 넣고 오래오래 단맛 즐기려고 혓바닥으로 요리 조리 살살 굴리면서 단 물을 쭉쭉 빨아먹었다. 하얗고 둥글둥글 민들민들하게 생겼다. 입에 물면 볼딱지가 툭 불거졌는데, 값이라고 해봤자 동네 하꼬방(구멍가게)에서 1원에 두알 정도였다. 

 군것질거리가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사탕은 아이들의 최고 동경의 대상이었고 먹고 난뒤 커다란 자랑거리기도 했다. 피자 햄버거 치킨등 먹을게 넘쳐나는 요즘에는 충치를 유발한다고 해서 기피할 정도로 아이들이 거들떠도 안보는거지만, 그때는 부모님이 읍내 5일장에 가시는날 아이들은 온종일 그 십리사탕을 사오실 아버지를 기다렸다.

 저녁나절,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시간에 아이들 눈길이 가는 곳은 동네어귀 서낭당 길목이었고 마음속에는 모두 깊은 꿍꿍이 속이 있었다. 

 “네 아버지 장에 가셨냐? 우리 아버지는 장에 가셨다.”
 “에이! 누구네 아버지는 장에 안가셨다”

  장에 간것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만 부모님이 장에 가지 않은 아이는 웬지 풀이 죽게 마련이었다. 옛말에 망건 쓰고 장에 간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들의 그런 바램이 있었기에 어른들은 더욱 장돌배기 처럼 장에 많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장에 가봤자 뻔한 살림일 정도로 가난한 형편들이었기에 재수 좋아 인심 좋은 사람 만나면 국밥 한그릇 탁배기 한사발 얻어먹는 행운도 있겠지만 공치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집에서 아버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릴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장에 내다 팔려고 들고 나간 마늘 한접, 애호박 몇개 판 주머니 쌈지돈 털어서 눈깔사탕 쎈뻬과자 한봉지는 준비 해야만 했다. 

 만약 그것도 못 사가지고 갔을때 실망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자식의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서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저녁 멀리 동구밖에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날 때 아이들은 한걸음에 달려가 아버지의 자루를 낚아챘다. 또다시무너진 논두렁길 몇백미터를 단숨에 달려 집에 당도하기전부터 자루를 풀어헤치니 온종일 기다리던 눈깔사탕이 어김없이 나왔다. 

 그걸 들고 동네 한가운데로 뛰쳐나와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나누어 먹기도 했고 개수가 모자라면 반으로 쪼개어 먹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돌려가며 서로 한입씩 빨아먹기도 했으니 그때도 진정 우정은 살아 있었다. 물론 맛으로 치자면야 그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하늘의 축복 그 자체였다.

 아이들의 열렬한 사랑에 힘입어 그 이후 줄줄이 사탕, 알사탕, 청바지사탕 등이 연달아 나왔고 유명한 알사탕 CF도 등장했다.

“아빠 오실때 줄줄이, 엄마 오실때 줄줄이, 우리들은 오리온 줄줄이 사탕~”
“아라리(알알이) 아라리 알사탕, 아라리 해태 알사탕, 달콤하게 동글동글 고소하게 떼굴떼굴 아라리 해태 알사탕”
“청바지 청바지 줄을 넘어라 청바지 청바지 사탕먹고 넘어라”

 이건 그때 당시 유행했던 줄줄이 사탕, 알사탕, 청바지 사탕을 선전하던 TV CM송이다. 아마도 40대 중반 이상의 어른들은 다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 집이 가난했다면 외갓집은 그래도 사정이 좋았다. 그래서 어릴적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는 항상 안방 문갑이나 장롱 깊숙이에서 뭔가 꺼내 주섬주섬 챙겨주셨다. 외손주가 오면 주실려고 숨겨두었던 탓에 이미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웬만큼 녹아버린 그것을 외할머니는 손수건에 싸 두셨다가 풀어제낀 것이다.

 외할머니의 자식인 7남매중에 우리 어머니는 유일한 딸이었기에 당신의 친아들과 친손자들 이상으로 외손주인 나를 예뻐해 주셨다. 외갓집에 놀러갈때마다 감을 삭혀 주셨고, 소죽을 끊이는 아궁이에 완두콩을 구워 주셨다. 당신의 밥상에 쌀밥과 생선을 남겨 식구들 모르게 내 입에 넣어 주셨기에 그런 외할머니의 정이 다른 친손자들에게는 늘 불만이었지만 외할머니는 내가 몸이 허약해 보여서 그러는거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읍내에서 사온 하얀 십리사탕을 밤 늦게 아무도 모르게 내 입에 쏙 넣어 주셨다. 지금 이나이 40대까지도 그 당시 외할머니의 십리사탕 맛은 가히 천상의 맛 그 자체였다.

 그때의 십리사탕, 지금 다시 입속에 넣고 굴리면 어떤 맛이 날까. 잠시나마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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