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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집들이 다 내 현장”

2024.07.15(월) 16:02:14무한정보신문(fuco21@daum.net)

그린지물아트 대표 김충희·김유자 부부
예산 최초로 상호에 ‘지물’ 명칭 사용, 어느덧 37년
책임시공·고객신뢰가 경영 원칙, 업장 정리 중요시 
자암 김구 후손, 군내 유일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


그린지물아트 김충희·김유자 부부. 김 대표는 1987년 개업하던 그해에 아내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린지물아트 김충희·김유자 부부. 김 대표는 1987년 개업하던 그해에 아내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새집에 입주하는 순간에 느끼는 설렘과 흥분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여기에 화사한 벽지와 근사하게 깔린 바닥 장판은 이 같은 신선한 느낌을 고조시키고, 비로소 집주인에게 새로운 보금자리에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건물 내부 마감재인 벽지와 장판은 건물이 지어질 때마다 빠질 수 없는 건축 재료다. 신축 건물뿐만 아니라 기존 건물로 이사하는 사람들에게 도배·장판 시공은 이삿짐을 꾸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예산군 예산읍 창말로 옛 충남방적 인근에서 37년째 벽지·장판 가게를 운영하는 ‘그린지물아트’ 김충희(70) 대표는 20대 청년 시절 친구가 들려주는 조언을 통해 사람이 살고, 일하고, 머무는 공간이면 어김없이 벽지와 장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곳이 주택이든 가게든 혹은 사무실이든 수요가 발생하는 벽지·장판의 무궁무진한 시장성을 알아본 김 대표에게도 최근 경기 불황은 녹록잖아 보였다.

김 대표는 “벽지·장판 시장은 자동차 시장과 유사하다. 좋은 자동차 없다고 못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경기에 굉장히 민감한 업종이다. 경제가 좋아지면 벽지·장판업도 호황을 누린다”며 “최근 5~6년 전부터 벽지·장판업이 주춤한” 배경을 국내 정치상황과 연결해 설명한다. 

그는 “세상을 좀 살다보니 정치가 안정되면 경제가 자연적으로 좋아진다는 것을 체득했다”며 40년 가까운 사업 경험담을 압축해 전한다.

신암 종경리가 고향인 김 대표는 신암초등학교와 예산동중학교 졸업 뒤 육군 1사단 입대 전까지 부모님의 과수원 일을 도왔다. 1978년 군 제대 뒤 충남교통 관리과 서무계에 근무하던 그는 직장생활이 맞지 않다고 여겨 그만두고, 학습지 관련 일, 음식 배달, 막노동 등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가 지물 가게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친구의 영향이 컸다. 경기도 김포에서 벽지공장을 운영하는 지인을 통해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뛰어든 도배시공을 겸한 벽지 관련 업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2001년 이전 당시 그린지물아트 가게 전경(위)과 현재 모습(아래). ⓒ 김충희·무한정보신문
2001년 이전 당시 그린지물아트 가게 전경(위)과 현재 모습(아래). ⓒ 김충희·무한정보신문

그는 정식 개업에 앞서 약 3년 동안 직접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도배 시공일을 했다. 무엇보다 “일이 커지고 사업이 확장될 경우 기사를 써야 할텐데, 내가 먼저 일을 알아야 다른 사람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경험이 누적되면서 사업 안목도 생겼다. “주변에 집이 얼마나 많은가, 저 집들이 다 내 현장이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벽지·장판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마침내 그의 나이 33살이던 1987년 현 가게 건물 길 건너편 약국 건물에서 ‘그린지물’ 간판을 걸고 개업했다. 당시 그린지물 포함해 옷가게, 전파사, 꽃집 4개의 가게가 한 건물 공간을 나눠 영업했다. 그 뒤 2001년 135평 규모의 현 위치의 가게를 매입해 상호를 ‘그린지물아트’로 변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아내 김유자(63)씨가 가게 내부 1/3 공간을 분할해 운영하는 선물가게·악세사리 잡화점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상호명에 ‘아트’가 추가된 이유다.

 

가게 내부 일부분은 아내 김유자씨가 운영하는 잡화점이다. ⓒ 무한정보신문
가게 내부 일부분은 아내 김유자씨가 운영하는 잡화점이다. ⓒ 무한정보신문

김 대표가 일하던 현장에서 아내를 만나 인연이 돼, 가게를 개업하던 해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현재 1녀 1남을 두고 있다. 

그동안 숱한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는 “주변의 보이는 모든 집들이 다 내 현장이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극복했다. 연탄 보일러가 기름보일러로 교체되는 2000년 초반 무렵을 가장 좋았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에 따르면 이 시기 예산군에 5층 미만 연립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벽지·장판 주문량이 늘면서 가게 호황기를 보냈다고 한다.

당시 벽지·장판 취급 가게들이 ‘~상회’로 끝나는 상호를 사용했는데, 그는 처음부터 ‘지물’이라는 상호명으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 가게 상호로 ‘지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곳은 예산군에선 내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항상 프로의식을 갖고 일을 한다. 책임시공이다. 지금껏 싸게 해줄테니 나한테 와라는 식으로 영업하진 않았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내가 시공한 일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장판 변천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영업을 시작할 무렵엔 럭키 모노륨, 한화 골드륨이 장판 시장의 주류를 차지했다. 특히 ‘모노륨’은 고객들이 장판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될 정도로 보편화됐는데, 기업의 브랜드 선점효과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뒤 “럭스트롱, 골드스트롱이 등장했다. 특히 ‘롱’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며 “주로 고속버스 바닥에 사용되는 질기고 두꺼운 재질의 장판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우드무늬 △사각 형태 △PVC 재질 데코 타일 △한 장씩 붙이는 타일 형태 장판 △수입 장판 등 출시되는 제품이 다양해지면서 고객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합성재질로 만든 나무 느낌을 연출한 장판과 마루 형태의 장판 등이 질기고 좋아 최근 가게를 찾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제품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가게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엄격하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물건은 있어야할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며 “효율적인 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손님이 찾거나, 필요한 물건을 제때 신속히 찾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또 고객과의 신뢰, 오늘 일을 미루지 않기 등도 그가 가게 운영에 금과옥조로 삼는 원칙들이다. 

20년 이상 방치돼 있는 옛 충남방적이 한창 가동할 때의 분위기도 들려줬다. “전성기의 충방은 대단했다. 공장 앞에 사옥이 있었는데, 유동인구가 많아 수시로 사옥에 입주하거나, 집을 비우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덩달아 벽지 주문량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김충희 대표는 조선시대 4대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인 자암 김구 선생의 후손이다. 지물가게 내 사무실 한켠에 자암 선생의 친필 ‘지일강산 여춘풍화’ 작품이 걸려 있다(왼쪽). [무한정보]에 실린 자암 김구 선생의 기사들을 탁자 유리 아래에 보존하고 있다(오른쪽).
김충희 대표는 조선시대 4대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인 자암 김구 선생의 후손이다. 지물가게 내 사무실 한켠에 자암 선생의 친필 ‘지일강산 여춘풍화’ 작품이 걸려 있다(왼쪽). [무한정보]에 실린 자암 김구 선생의 기사들을 탁자 유리 아래에 보존하고 있다(오른쪽).

김 대표는 조선 중종 때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자암 김구 선생의 후손이다. 현재 자암기념사업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암 선생은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기묘명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안평대군, 양사언, 한석봉과 함께 조선시대 4대 명필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예산군에서 유일하게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년 임기 채우고 한 번 연임해 5년째인데, 후배들을 위해 1년 뒤 임기를 마치면 물러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만사가 형통하길 바란다. 건강이 최고다”라는 말로 군민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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