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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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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의미가 큰 사찰 유적, 공주주미사지

2024.03.20(수) 08:04:18희망굴뚝 ‘友樂’(coke4856@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며칠 전, 공주시의 법정동인 주미동(舟尾洞)에 다녀왔습니다. 주미동은 행정동인 금학동(金鶴洞) 관할로 북쪽 금학동으로 동학혁명 때의 격전지인 우금치(牛禁峙)가 있고, 그 인근에는 주미산이 있습니다.

공주 주미산 중턱에는 충청남도 기념물인 '주미사지(舟尾寺址)'라는 사찰 유적이 있습니다. 주미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토대로 주미사가 건립된 시대를 통일신라로 추정하지만, 한편에서는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주미사지 이정
▲ 공주주미사지 이정표

주미동에 갔다가 주미사지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초행자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주변이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파괴되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공주 원도심에서 우금티터널을 지나 주미동 양달뜸길로 들어서면 안골저수지가 나타납니다. 안골저수지는 지도상에는 잘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참고해 주세요. 그곳에서 100m 위쪽에 공주주미사지로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이정표에 400m라고 적혀 있으니 쉽게 찾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400m가 가장 큰 난관이니 방심은 금물입니다.

이정표에 서서 보면 집 한 채가 보이고 그 뒤편으로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자차로 방문하는 분들은 이정표 인근에 주차 후, 도보로 이동하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주미사지 안내판
▲ 공주주미사지 안내판

공주주미사지로 가는 길만 잘 알고 있으면 이정표에서 400m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주미사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면, 문화재가 있는 곳에 세워져 있는 익숙한 안내판이 2개나 보입니다. 공주주미사지에 도착해서 안내판부터 읽어 보았습니다. 공주 주미사지는 주미사가 있었던 절터로 1997년 발굴 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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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주미사지 전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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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주미사지 전경 2 

조선후기 신유의 시집인 죽당집(竹堂集)에는 주미사에 대한 시가 전하는데, "어찌하여 절 이름을 산 이름을 따라서 지었는지 물었더니, 이 부근 지형이 배와 닮아서 그렇다는 대답에 웃으면서 어차피 산다는 것은 곳곳을 떠다니는 배와 같을지니"라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주미사지 전경 2
▲ 공주주미사지 전경 3

이곳 건물터에서는 '김양무나마(金良武奈麻)'라는 명문이 새겨진 통일신라의 비석편이 출토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안내문에 '김양무나마(金良武奈麻)'와 관련한 사진도 안내 글도 없어서 궁금했는데, 검색을 해도 찾아지지 않습니다. 오래된 안내판 하나를 철거하고 공주주미사지에 대한 안내도와 미흡한 설명을 보충한 새로운 안내판이 세워졌으면 싶었습니다.

사리공
▲ 석등대석(石燈臺石) 

석등대석을 위에서 본 모습
▲ 석등대석을 위에서 본 모습

안내판 뒤편으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석등대석이었습니다. 석등은 사찰의 경내나 능묘 등에 돌로 만들어 세운 등기(燈器)를 말하며, 석등대석(石燈大石)은 돌 등잔을 받치는 돌이라고 합니다.

부여의 가탑리폐사지(佳塔里廢寺址)에서 백제의 석등 대석(臺石)이 발견·조사된 바 있고,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에서 백제 석등의 옥개석(屋蓋石), 화사석(火舍石), 연화대석(蓮華臺石) 등의 부재가 발견·조사된 점으로 미루어 이미 삼국시대부터 석등은 건립됐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궁궐이나 저택 등의 유적지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점에서 불교 전래 이전의 능묘에는 석등을 세우지 않았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석등이 불교에서 기원했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석재
▲ 석재

석등대석 뒤편으로는 자연 암반 위의 사리공이 남아 있고, 탑지(塔址)에는 탑석재 1개가 있습니다. 사리공(舍利孔)은 불탑의 초석 따위에 사리를 넣을 만한 크기로 뚫어 놓은 구멍을 말합니다.

폐와무지
▲ 폐와무지

충청남도 기념물 표지석
▲ 공주주미사지 표지석

석등과 석탑이 있었던 자리가 확인됐으니, 그 뒤편에 금당과 강당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만, 안내문에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탑지 뒤편에 폐와무지와 초석(礎石)류가 보여 그 일대쯤이 아닐까 추측만 해봅니다. 폐와무지 앞쪽에는 공주주미사지가 충청남도지정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었음을 알게 하는 표지석 하나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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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대

바위
▲ 주미사지 인근에는 큰 바위들이 많이 보인다.

안내문에 서쪽에는 승려나 신도들이 수행하던 장소인 자연 석굴이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서쪽을 살피니 위쪽으로는 축대 일부가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 게 전부였습니다.

자연 석굴
▲ 자연 석굴이 있는 장소로 추측되는 곳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법 큰 바위들이 군집한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경사가 있어 조심하며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바위틈에 작은 구멍이 보이는 곳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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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 큰 나무를 기준으로 좌측에서 발견된 굴 1

큰 나무를 기준으로
▲ 가운데 큰 나무를 기준으로 좌측에서 발견된 굴 2

키가 제법 큰 나무를 기준으로 왼쪽에 작은 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석굴로 보기에는 지극히 좁은 데다 수행하던 장소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운데 큰 나무를 기준으로 우측에서 발견한 굴
▲ 가운데 큰 나무를 기준으로 우측에서 발견한 굴

나무 오른쪽으로도 굴이 보여 들여다 보았습니다. 굴의 정면뿐만 아니라 좌측과 우측으로도 구멍이 나 있어 성인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 공주주미사지의 석굴은 서혈사(西穴寺)나 동혈사(東穴寺) 등의 석굴사원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입구는 높이가 70cm, 너비가 102cm이나 내주는 높이가 121cm, 길이 320cm라고 합니다. 자연 석굴에 대해서도 안내문에 위치를 정확히 표시해 주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주의할 점도 병기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미사지에서 내려다본 전경
▲ 공주주미사지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

절터를 말하는 '○○사지'라는 곳을 가 보면 발굴 후에 복개를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유적지가 가진 가치와 의미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이 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찾은 주미사지는 마을 주민들도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지 못할 만큼 찾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듣기에는 공주주미사지 입구에 세워진 이정표도 여러 차례 민원이 들어가서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충청남도지정 기념물이 잘 보존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공주 주미사지
충남 공주시 주미동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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