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구순 나이에 세밀한 연필스케치화 그리는 이재환 옹 (92·고대면 용두리)
“삶의 기쁨 더하는 그림…살아갈 힘이 됩니다”
대나무 구두주걱 만들기 등 취미활동 이어와<BR>식물과 동물 등 복사하듯 세밀하게 그림 그려<BR>고대면 주민소통 오아시스에서 작품 전시 중
2024.02.29(목) 19:05:46관리자(yena0808@hanmail.net)
▲ 이재환 어르신
올해 92세의 이재환 옹은 시간이 날 때면 스케치북을 꺼내든다. 손에는 연필과 색연필을 쥐고 꽃과 식물은 물론, 이름도 신기한 갖가지의 동물을 그려나간다. 연필스케치화 그리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이 옹은 낮에 시작한 취미활동이 저녁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날이 다반사다.
대나무로 수제 구두주걱 만들어
고대면 대촌1리 출신의 이재환 옹은 6년 전부터 취미 활동으로 대나무 구두주걱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대나무 구두주걱은 용두리 집 뒤편에 있는 대나무 밭에서 직접 적당한 크기의 대나무를 베어다가 손질해 만든다. 손잡이 윗부분에는 ‘인지위덕(忍之爲德)’을 써넣었다. ‘인내를 덕으로 삼는다’는 사자성어로, 참으면 아름다운 덕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았다.
▲ 이재환 어르신이 직접 만든 대나무 구두주걱. 손잡이 윗부분에는 ‘인지위덕(忍之爲德)’을 써넣었다.
▲ 대나무 구두주걱에 새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가 제작한 대나무 나무주걱은 손잡이 부분이 기존의 구두주걱과 다르게 더 길게 만들어진다. 이재환 옹은 “보통 구두주걱을 쓸 때 허리를 굽혀야 하는데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손잡이 부분을 길게 제작한다”고 말했다.
1년여 전부터는 나무주걱 아랫부분에 그림까지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길조로 여겨지는 ‘까치’ 등 새 그림을 그려넣는다고.
5년 전 연필스케치화 독학
구두주걱 속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는 각기 생김새도, 앉은 모양새도 다르다. 까치가 앉은 나뭇가지나, 뒤에 배경으로 그려 넣은 산새도 똑같은 것이 없는데 이는 모두 이 옹이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그의 그림 솜씨는 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과 동물 그림에도 발휘된다. 대나무 구두주걱 만들기에 이은 이 옹의 또 다른 취미인 연필스케치화도 어언 5년째에 이른다.
이 옹은 “구두주걱 만들 때 모두 수작업으로 하고 잔톱질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손가락 살이 벗겨지기도 했다”며 “조금 더 다치지 않는 취미활동이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연필스케치화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학으로 시작한 그림은 처음에 며느리가 새 종류의 그림을 컴퓨터로 뽑아줘서 그것을 보면서 스케치를 했다. 이후 며느리가 동물도감 <진짜 진짜 재밌는 동물 그림책>을 사다 주면서 책을 보며 동물을 그렸다. 동물의 털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그리고, 색연필로 색까지 더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해갔다. 이 옹은 “동물의 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면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책에 나온 그림을 복사한 듯이 책을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면서 식물, 동물, 사물의 형상을 익혔다. 형상을 익히자 똑같이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형태로 그릴 수 있게 됐고, 대상에 맞춰 배경도 상상해 그리는 응용 단계에 이르렀다.
▲ 이재환 어르신이 직접 그린 그림
▲ 이재환 어르신이 직접 그린 그림
▲ 이재환 어르신이 직접 그린 그림
“그림 그리다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지면서 시간이 날 때면 이 옹은 스케치북을 꺼내든다. 집에서도, 노인회 사무실에 나와서도 연필스케치화를 그린다. 집에서는 꽃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그는 “시간만 있으면 그림을 그린다”며 “밝을 때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져서 어두컴컴한 밤이 될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림에 푹 빠지다 보니 이 옹은 거리를 걸을 때 나무 하나, 꽃 한 송이 허투루 보지 않게 된단다. 그는 “동물에 맞춰서 배경을 상상해서 그리기도 하니까 실제 나무와 꽃 등을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면서 “길을 걷다가 이상한 형태의 나무를 보면 그냥 못 지나간다”고 말했다.
“나라고 왜 고통이 없었겠습니까.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된지 25년이 됐죠. 혼자 살면서 적적할 때도 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그러한 감정들을 잊게 돼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앞으로도 내 힘에 맞는 취미를 찾아 활동할 수 있길 바라요. 또한 내 기력이 있는 한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한편 전종훈 고대마을교육자치회장이 이 옹의 그림을 보고, 주민소통 오아시스에서 이 옹의 그림을 상시 전시하도록 도왔다. 전 회장은 “지역 어르신들이 높은 자존감을 갖고 삶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을교육공동체에서는 어르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오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어르신의 솜씨를 널리 알리는 계기를 드는 한편, 또 다른 어르신의 재능을 찾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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