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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에서 가장 기운이 넘치는 곳?

청송사 ‘홍성상하리미륵불’ 주변이다②

2023.11.24(금) 09:37:50홍주신문(uytn24@hanmail.net)

용봉산에서 가장 기운이 넘치는 곳? 사진



홍성상하리미륵불주변은 용봉산맥(龍鳳山脈)이 끝나면서 기운이 응축된 곳에 마치 열매를 품은 것처럼 음()에 해당하는 계란형의 모암(母巖)이 여근석(女根石) 형태로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앞에는 음()으로부터 씨앗이 하나 떨어져 나온 듯 8에 달하는 거석(巨石)이 우뚝 솟아 양()을 상징한다는 것이 풍수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바로 여기에 미륵불을 조각해놓았다.

 

미륵불 앞에는 마치 산천을 축소해 놓은 형태의 너럭바위가 명당임을 알리는 옥인석()으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신기한 것은 옥인석에서 오른쪽으로 45도 방향으로 산 정상을 바라보면 미륵불과 흡사한 바위가 산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거불()들이 조성될 때 명당이라는 좋은 위치에 석재를 옮기고 쌓아서 만들었겠지만 상하리미륵불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모든 조건이 자연적으로 갖추고 있어 감히 최고의 미륵불이라 할 수 있다.

 

이 미륵불 앞 너럭바위 아래에 있던 연못은 매립됐고, 뒤쪽에는 건물이 있었는데 철거됐다고 전한다. 아직도 일부 건물은 개인 땅에 건축돼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옥인석의 너럭바위도 일부 파손됐고, 주변은 어느 정도 묻혀있다는 설명이다.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산 정상에는 상하리미륵불을 내려다보는 자연석의 미륵불이 있는데, 자연이 그대로 빚어낸 최고의 걸작이 아니겠는가.

 

용봉산 청송사의 상하리미륵불상은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 등이 당시 국가가 주도했던 권위적인 모습과는 달리 민중과 소통하려는 소박하고 찬근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당시 불사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종교적 입장보다는 최고의 명당 자리에 민중의 소원을 들어주는 상징으로 미륵불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시굴보고서에 의하면 상하리미륵불 동쪽으로 사찰 터가 일부 발견됐다.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김성구 박사는 보고서에서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와편과 자기편이 나왔으며, 특히 왕자명(王字名) 와편은 매우 특이한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고지도의 표기와 문헌 등을 보면, 고려 공민왕의 왕사에 이어 우왕의 국사를 지냈고, 한국불교 대표 종단의 종조(宗祖)와 중흥조(中興祖)로서 불교와 한국철학 사상의 중심에 있던 태고 보우국사의 사리탑을 모셨던 지금의 용봉산인 팔봉산(八峯山) 청송사(靑松寺) 가 확인되고 있다. 그곳이 지금의 상하리미륵불이 있는 청송사이다.

 

고려사공민왕 5년 홍주출신의 태고 보우를 왕사로 추대하고 고향인 홍주를 목()으로 승격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제자 유창의 태고행장에는 보우국사의 사리탑을 4곳에 모셨고, 그중 하나가 팔봉산(八峯山; 지금의 용봉산) 청송사(靑松寺)’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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