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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2023.11.17(금) 02:51:40호우(foxbon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금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700여 명의 의사들이 묻힌 곳이 있다.
바로 칠백의총이다.
오늘은 금산의 역사적인 유적지 칠백의총에 대해 소개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칠백의총은 주차비와 입장료가 무료이고 넓은 주차장이 있어 편하게 차를 세우고 기념관으로 향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안으로 들어서서 직원분의 안내를 받아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전시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1층의 1전시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봉기해 금산 전투를 이끌었던 위인들과 이름을 남기지 못한 칠백의사들에 대한 정보를 전시하고, 2층의 2전시실은 국가의 위기 상황에 맞서며 희생한 칠백의사에 대한 이야기와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과 조선이 벌인 전쟁이다.
일본군은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침공하려 했다.
당시 조선의 군대는 약화되어 제대로 일본군에 대항하지 못했지만 의병이 일어나 저항하며 명나라의 도움까지 더해 우리땅에서 일본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임진왜란 당시 금산은 전력적 요충지였다.
이곳에서는 1차부터 5차까지 5대 전투가 벌어졌다.
1차 전투는 1592년 7월 의병장 조헌과 의승장 영규가 왜군을 격퇴하고,
2차 전투는 1592년 8월 왜군이 복수하려고 다시 침투했고,
3차 전투는 1593년 4월 왜군이 청주를 탈환하려 했고,
4차 전투는 1597년 9월 왜군이 명나라의 군대를 격퇴하려 했고,
5차 전투는 1598년 1월 왜군이 철수하면서 발생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금산 전투를 이끌었던 위인으로는 의병장 조헌, 의승장 영규, 의병장 고경명. 김천득, 김천수 등이 있다.
이중 의병장 조헌은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절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나는 1전시실에서 가슴 아픈 역사와 마주한 후 2층의 2전시실로 향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2전시실은 칠백의사의 추모공간이다.
왜군에 의해 순절한 700여 명의 의사들 시체는 조헌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거두어서 무덤을 만들었다.
이곳이 오늘 소개하는 금산 칠백의총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나는 기념관을 나와 무덤으로 향한다.
기념관 뒤편에는 홍살문이 있고, 이곳을 지나 오르면 숭의지와 의총문, 순의비, 취의문, 종용사 그리고 끝에 무덤이 있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성역을 의미하는 홍살문을 지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숭의지라는 작은 연못이다.숭의란 순절한 의사들의 영혼을 숭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못에는 특히 잉어가 많은데 이는 순절한 의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의총문은 첫 문으로 외삼문에 해당한다.
사당과 경내를 구분하는 문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순의비이다.
의병장 조헌 선생이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 연곤평 전투에서 순절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비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이었던 이사까와 마찌오가 이 비문을 폭파했는데, 주민들이 파편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8.15 광복 후 파내 보관해 오다 1971년 파편을 붙여서 비각을 세우고 보존하고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내삼문에 해당하는 취의문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종용사이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선열의 영혼을 모시고 있다.
1647년 호남 지방 유림에 의해 건립되었고, 1663년 현종은 종용사라 사액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것을 1952년 복원하고, 1971년 재 건립되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칠백의총이다.
1592년 8월 의병장 조헌선생과 의승장 영규대사 그리고 칠백의사는 금산 연곤평에서 왜군 만 오천여 명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조헌의 제자였던 박경량과 전승업이 유해를 거두어 만든 무덤이다.
무덤 앞에 선 나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잠시 경의의 시간을 갖는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무덤에서 내려온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칠백의사순의탑으로 향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무덤 칠백의총 사진

칠백의사순의탑이다.1976년 칠백의사의 거룩한 뜻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 당시 격전지였던 연곤평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립되었다.
높이는 13.8m이고, 탑신 아래에는 용이 새겨져있고, 위에는 동으로 만든 창과 방패가 장식되어 있다.

오늘은 칠백의총을 소개했다.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운 역사적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제야 처음으로 금산 칠백의총에 찾아왔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며 이 글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금산칠백의총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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