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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 교수, “백제장신구, 단순·정제美 보여줘”

3일 고고재에서 ‘출토유물을 통해 본 백제인의 미’ 특강

2023.08.06(일) 05:01:36특급뉴스(stopksk@naver.com)

이한상 교수, “백제장신구, 단순·정제美 보여줘” 사진

세계유산 백제역사지구 공주 시민강좌 백제이야기 사랑방이 3일 오후 7시 공주시 장대3길 8에 위치한 고고재에서 (재)백제세계유산센터 주최, 금강과 사람들협동조합 주관으로 열렸다. (사진)

이날 대전대학교 이한상 교수는 ‘출토유물을 통해 본 백제인의 미’에 대해 특강을 실시했다. 이 교수는 이날 “최근 한성 시기 후반에서 사비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유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라며 “당시 금과 은으로 장식한 각종 장신구와 장식대도, 금속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나 생활용품도 제작됐으나, 그 소유는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당시 백제의 왕족과 귀족은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의 표상으로서 이러한 물품을 소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출토유물의 제작에는 백제 최고의 예술가였던 금공장인이 관여하였을 것이고, 그들은 금공품 사용자들의 기호나 요구에 맞추어 다양한 물품 특히 금속제 장신구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한성도읍기, 웅진도읍기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백제의 미, 미의식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성도읍기의 금속제 유물은 출토된 예가 매우 드물다”라며 “처음에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자루 등 주조품만 확인되고, 초기 백제의 왕궁이 있었던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자루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진(晋)나라 허리띠 장식이 있으며, 아직 백제에서 자체적으로 주조한 금속용기는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서기 5세기를 전후하여 금동관과 금귀걸이, 금동 허리띠, 금동신발 등 금속제 장신구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는데, 주요 분포권은 남한강 수계의 천안, 서해안의 서산, 금강 수계의 익산과 공주, 그리고 차령산맥 이북과 이서지역의 주요 거점지역”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마도 한성백제의 왕실이 지방의 주요 세력을 통제하기 위하여 사여한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한편 이 시기의 금속제 장신구 문화는 정치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대가야로 전파되며, 다시 일본열도로까지 넓게 파급된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서기 475년 갑작스런 천도 이후 6세기에 가까워지면서 체제가 안정됨에 따라 각종의 화려한 장신구가 만들어지는데, 특히 1971년 극적으로 조사된 무령왕릉에서는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금속제 장식품이 다량으로 출토되었고, 더욱이 무령왕릉에서는 무덤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진 지석이 공반됨으로써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시기의 장신구로는 관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 신발이 있는데, 신발은 베개나 발 받침처럼 확실히 장송 용품이지만, 나머지 장신구에는 실용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라며 “왕비의 은제팔찌에는 왕비가 돌아가시기 5년 전에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왕의 관직은 중국 측 기록에 보이는 금꽃(金花]과, 왕 귀걸이에 남아 있는 보수의 흔적도 장신구의 실용성을 말해준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왕의 허리띠 장식에 장식된 백호와 주작, 두꺼비는 사신(四神)과 일상(日像)·상(月像)의 일부분”이라며 “이는 고구려 혹은 남조로부터 수용한 선진사상을 자기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성 및 웅진기의 장신구는 지배층의 구성원임을 표상하는 상징물이었고, 물품의 격으로 보면 지방 세력이 중앙 지배층의 복식과 장송 용품을 공유하는 셈이며, 이것은 당시 백제가 지방의 유력자를 지배층에 편입시켜 그들을 매개로 지방 지배를 실현하였음을 보여준다”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에 비하여 사비기에는 엄격한 관위제가 실시되면서 관위에 따라 장신구 역시 소유에 제한이 있었고, 관복의 부속품으로 변모했으며, 이전 시기에 비하여 형태도 간략해졌고, 정형화된 모습이 관찰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주변국 장신구와 비교할 때 백제의 장신구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며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라며 “그것은 장신구뿐만 아니라 여타 금공품에서도 확인되는데, 이 역시 삼국사기에 기록된 "검이불루(而不) 화이불치(華而不修)"라는 표현과 상통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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