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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석, “대통사지는 대통교~공주사대부고사이 감영길 북쪽”

27일 웅진 최초의 사찰 대통사지 관련 특강 펼쳐

2023.07.28(금) 09:01:41특급뉴스(stopksk@naver.com)

서정석, “대통사지는 대통교~공주사대부고사이 감영길 북쪽” 사진




세계유산 백제역사지구 공주 시민강좌 백제이야기 사랑방이 27일 오후 7시 공주시 장대3길 8에 위치한 고고재에서 열렸다. (사진)

이날 공주대학교 서정석 교수는 ‘웅진 최초의 사찰, 대통사지’라는 주제로 특강을 실시했다. 서정석 교수는 이날 “삼국시대 왕도의 3요소로는 풍납동 토성(몽촌토성), 공산성, 부소산성, 왕궁리 유적 등에서 볼 수 있는 ‘왕성’과 석촌동 고분군, 무령왕릉원, 부여왕릉원(능산리), 쌍릉 등에서 볼 수 있는 ‘왕릉’, 대통사지, 정림사지, 익산 미륵사지 등에서 볼 수 있는 ‘사찰’의 3요소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정석 교수는 “삼국유사에는 대통사의 창건과 관련 ‘대통(大通) 원년 정미(丁未)에 양나라 황제를 위하여 웅천주(熊川州)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대통사(大通寺)라 하였다’라고 기록돼 있지만, 南史 (梁 本紀)에 “처음 황제가 동태사(同泰寺)를 창건하고 이에 이르러 궁궐 북쪽의 대통문(大通門)을 열었다. 그 문은 절의 남문(南門)을 마주하고 있다.…대통(大通)으로 개원(元)하였다."라고 ‘대통(大通)’이라는 연호를 쓴 내력이 있다”라며 대통사의 ‘대통(大通)’을 절 이름이 아닌, 연호 ‘대통(大通)’일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서 교수는 “대통(大通) 원년(元年) 정미년(丁未年) 창건은 527년이고, 중대통(中大通)은 기유년(己酉年) 창건은 529년으로,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웅천(熊川)은 곧 공주(公州)로, 당시는 웅천이 신라에 속해 흥륜사(興輪寺)를 세우던 정미년에는 다른 고을에 까지 절을 세울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아마도 대통사의 창건 연대는 정미년(丁未年)이 아니고, 중대통(中大通) 원년인 기유년(己酉年)에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대통사를 건축한 사람들은 당시 현지 백제인들이 아닌, 양나라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떠났던 사신과 함께 왔던 중국 기술자들이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근거로 대통사에서 출토된 와당은 공산성에서 출토된 와당과 완전히 다르며, 암막새 등 못 보던 기와가 출현하는데, 이는 변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성왕(聖王)’은 곧 ‘전륜성왕(轉輪聖王:인도 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주의 대통사는 절의 이름(寺名)과 사역(寺域)을 알 수 있는 백제 최고(最古)의 사찰로, 대통교와 공주대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 사이의 감영길 북쪽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사는 성왕이 돌아가신 부왕(父王) 무령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535년경에 축조를 시작해 543년 정도에 공들여 완성한 원찰의 성격을 지닌 사찰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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