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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단지리유적 횡혈묘군의 주인공은 누구?

(재)동방문화재연구원 이호형 원장, 공주 단지리유적관련 강의

2023.07.26(수) 11:03:50특급뉴스(stopksk@naver.com)

공주 단지리유적 횡혈묘군의 주인공은 누구? 사진


 

25일 오후 7시 공주시 장대3길 8에 있는 고고재에서는 세계유산 백제역사지구 공주 시민강좌가 열렸다.

백제세계유산센터 주최, 금강과 사람들 주관으로 열린 이날 강좌에는 (재)이호형 동방문화재연구원 원장이 공주 단지리유적 횡혈묘군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강의를 펼쳤다.

이호형 동방문화재연구원 원장이 강의를 하고 있다.

▲ 이호형 동방문화재연구원 원장이 강의를 하고 있다.




이호형 원장은 “횡혈묘란 단애면이나, 구릉의 경사면에 굴식으로 파서 매장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의 횡혈모는 구릉의 경사면을 수직에 가깝게 파고, 굴식으로 조성하며 공주 단지리 유적에서는 1기에서 2인~5인의 유골이 출토되는 것을 봤을 때 추가장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공주 단지리유적 횡혈모에서는 토기류 (삼발형 토기, 호류, 조족문 토기, 삼족기, 개배, 고배, 병형토기, 대부완 등), 철기류(처부, 철경, 철도자 등 농공구류), 금은제(금제 세환 이식 6점, 은제 세환 이식 1점), 스에키기술이 반영된 토기 등이 부장된 것이 특징이며, 무기류나, 의기류는 출토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공주 단지리유적 횡혈묘 조영집단의 성격은 단지리유적 횡혈묘의 조성 시기가 웅진도읍기(5C 후반 ?6C 전반)인 점으로 봤을 때 웅진지역에 거주하던 왜(계)인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으며, 유적 내에 백제 웅진도읍 석축분이 함께 조사된 점으로 살펴봤을 때 조영집단과 유기적 관계를 지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특히 “북부 큐슈(北九州)지방 부젠(豊前)지역 초기 횡혈묘 구조와 유사한 점, 스에키(須惠器) 기법이 반영된 토기 출토된 점이 주목되며, 이 지역에 와 정착한 왜(계)인이 아닌가 유추해 볼 수 있으며, 부장 유물에 무기류가 없는 것을 볼 때 무인(武人) 집단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18호 종장식 횡혈묘를 제외하고 봉분의 흔적을 찾기 어렵고, 어린 아이 및 여성 뼈가 출토(3호) 된 점으로 보아 피장자 집단이 정착 생활한 것으로 추측되며, 금은제 귀고리가 출토된 점으로 보아 고위층은 아니더라도 중상위 계층도 포함된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볼 때 단지리 횡혈묘군의 주인공은 479년 동성왕과 함께 와서 백제에서 중앙 관료로 편재되어 생활하던 관인과 및 상인(교역) 등 이 지역에 정착한 왜(계)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라고 말했다.

한편 <日本書紀> 23년 기사에는 “479년 유랴쿠는 백제 삼근왕이 죽자 인질로 倭에 와 있던 곤지의 다섯 아들 중 왜에서 태어나고 자란 둘째 아들 말다왕 (末多王=동성왕)이 귀국할 때 '축자국(筑紫國) 군사 500인(人)'으로 호위케 했다.”

<隋書>東夷傳 百濟條

“백제에 신라, 고구려, '왜'과 함께 중국인이 혼재하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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