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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의 필경사

계몽소설가이자 시인, 독립운동가였던 심훈이 가슴으로 쓴 상록수의 고향 필경사에 가다

2023.04.11(화) 10:04:25춘당(yosaebi45@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세상이 점점 글로벌화되고
인적 교류가 활발해짐으로써 민족 구성원도 다양해지는 요즈음에
친일 논란이나 종북몰이 같은 쓸데없는 이념 논쟁은
이제 별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이 나라를 지켜내고 발전시키기에
온 몸을 던진 독립운동가나 민족 지도자들 앞에서
이웃끼리의 다툼은 송구스러운 일이고
이제 그들이 바라고 이루고자 했던 나라의 독립과 백성들의 안위는
우리들의 사상이 되어 계승 발전시켜야 된다고 봅니다 .
그들의 그 고루한 정신을 이어가려는 것은
이 땅을 물려받은 백성들이라면
꼭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이며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서슬 푸른 일제 강점기에 뜨거운 가슴으로
민족 정신을 일깨우려 했던 독립운동가요 시인이며 소설가이셨던
'상록수'의 저자 심훈 선생이
서해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말년을 사셨다는 것은
이 지역 주민으로써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주로 서울에서 보내셨지만
일제의 강압으로 옥살이와 문화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자
부모님이 계시는 당진의 부곡리로 낙향하여
열정적인 다수의 저항시와 소설로 집필활동을 펼치시며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완성하시어 
우리의 문학사에도 길이 빛나는 금자탑을 이루셨습니다.
오늘은 다소나마 그 분의 체취를 느껴보려 
한진항 옆에 위치한 필경사로 길 나섬을 해봅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아산만 바다의 눈부신 윤슬

심훈의 필경사 사진

서해대교가 바라보이는 해안 카페의 정원

심훈의 필경사 사진

서해대교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 기념관 길목에 있는 시골 교회

1932년에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로 낙향하여
2년간 머물며 그가 창작활동을 하였던 이곳은
 할아버지의 집이자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인
선생의 장조카 '심재영' 고택입니다.
넘실대는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이곳에서 그는 울분을 삭이며
민중들의 자아 의식을 일깨우고자
펜으로 농사를 지어 국민들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였던 장소입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1930년에 준공되었다는 이집에는 종손인 심천보님과 이경애님이
실제 거주하는 집입니다.
 선생이 기거하던 사랑채의 문간방에는
완당(추사)의 글씨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끕니다.
진품은 따로 보관되어 있고 복제품을 걸어놨다고 합니다만
그가 수시로 드나들며 보았을 이 현판이
그에게도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재영 선생의 흉상과 ▼그의 약력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재영 고택의 지근거리에 있는 [심훈 기념관]을 방문합니다 
그가 설계하고 지었다는 황토 초옥과 상록수들,
그리고 선생을 추억할 수 있는 조형물, 묘소가 집 옆에 자리하였고
주차장 밑에는 반듯한 기념관도 세워져 있어
선생의 유품과 집필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그가 온 몸을 던져 토해낸 것 같은 
'그날이 오면'을 읽어 보면 가슴이 아리고 숙연해집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오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 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불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훈 -


심훈의 필경사 사진

 
정면 다섯칸, 측면 두칸의 황토 초가집은
그가 손수 설계하고 지었다고 하는데
겨우 두어해를 살다 간 집입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집(筆耕舍)         

심훈의 필경사 사진

        
상록수 문화관은 개방하지 않는 것 같아 접근하지 않았네요.

심훈의 필경사 사진


그가 심었다는 향나무와 사철나무(冬靑)를 비롯하여
 소나무와 전나무도 푸르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그의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마전리에서
2007년 현재의 당진시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로 이장하고
기념비를 세운 것이랍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 묘소

기념관 안에는 심훈 선생이 생전에 집필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놨습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기념관 안의 심훈 선생>
 

심훈 선생 약력

1901년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출생
1915년 교동보통학교 졸업 / 경성고등보통학교 입학               
1919년 경성보통학교 (현 경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3.1 운동 참여,
           서대문 형무소 투옥중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을 지음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우당 이희영,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등과 교류
1921년 항주 지강대학에 입학                                       
1926년 순종의 국장이 준비되고 있는 돈화문 앞에서 <통곡속에서> 지음
            영화 '장한몽' 후반부 출연(이수일 역)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소설 <탈춤> 동아 일보에 연재                           
            (필명을 심훈으로 사용 시작)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 원작, 각색, 감독하여 단성사에서 상영
1930년 시 <그날이 오면> 지음                                      
           장편 소설 <동방의 애인>을 조선일보에 연재(일제 검열로 중단)
           장편 소설 <불사조> 조선일보에 연재(일제 검열로 중단) 
1931년 경성방송국 문예 담당으로 입사했으나 사상문제로 퇴직  
1932년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                                           
           시집 <그날이 오면> 출간, 검열로 무산                              
1933년 장편 소설<영원의 미소>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1934년 장편소설 <직녀성>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당진에 필경사를 설계, 건축함                       
1935년 장편소설 <상록수> 동아일보에 연재                      
1936년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발표(마지막 작품)               
           장티푸스로 인해 36세의 나이로 사망                                

선생은 갔지만 유품들은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살아 생전의 모습과 유품들▼

심훈의 필경사 사진


선생이 사용하던 손때 묻은 책상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기념관 옥상에 마련된 심훈 선생 동상

심훈의 필경사 사진

 

집필하는 틈틈이 손과 마음을 쉬기 위하여
하염없이 내려다 보았을 바다에는
이제는 도로가 생기고 거대한 다리가 놓였습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푸른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심훈의 필경사 사진


심훈의 필경사 사진


당시로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소중하기만 했을 시절에
우리의 후손들이 풍요를 구가하며 
멀리 해외로 까지 구경을 다닐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심훈의 필경사 사진

자란

오직 잔인한 핍박에서 벗어나
내 것을 내 것이라 하고
이웃들과 오손도손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만을
간절히 바라던 소박한 선생의 꿈이
당신들이 바친 헌신의 아픔을 딛고 오늘의 번영을 이룬 것이지요.
숙연한 마음을 안고 필경사를 물러나오며
서로 다투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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