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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추사고택 유적지를 찾아서

2023.03.16(목) 22:39:29해피플렌티(elencia0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43호인 추사고택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이곳은 선생의 증조부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1 720~1758)이 조선 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1776)의 따님 화순옹주(和順翁主, 1720~1758)와 혼인한 뒤 용궁리 일대를 하사받으며 지어졌습니다. 
 

추사체험관

▲ 추사체험관


체험프로그램
○ 추사체 써보기
, 난초 그리기, 세한도 그리기, 종이접기 : 1,000
○ 탁본(2,000원), 나비부체꾸미기(4,000)
○ 원형부채꾸미기, 세한도 색칠하기, 난초색칠하기, 고택컬러링키트 : 5,000
 - 체험시간 : 917
 - 문의 : 041-339-8250
 - 체험프로그램신청 링크 https://www.yesan.go.kr/prog/chusaExprnProgrm/chusa/sub04_02/list.do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추사고택은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어납니다
. 이른 봄에는 매화가 피어나고, 살구꽃, 모과꽃, 수선화도 피어납니다. 주차장도 넉넉하여 따뜻한 봄철에 나들이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고택입구에 있는 추사고택관광안내소에서 해설사님을 만나 해설을 들었습니다
.
○  해설사 활동시간 : 310(10:0017:00), 112(10:0016:00)
○  예약문의 : 041-339-7323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먼저 왼쪽에 있는 추사기념관으로 갔습니다
.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조선왕조 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인 추사는
1786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이조판서 김노경의 큰아들로 태어났으며, 8세에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가 김노영의 양자로 입양되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조부 김흥경은 영의정을 지냈고,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지면서 추사의 가문은 명문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추사연보

▲ 추사연보


1819
(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55세에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고, 66세에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었으며, 67세에서 유배에서 풀려났고, 71세에 서거하였습니다.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김정희는
55세에 모함을 받아 제주에서 9년간 고단한 귀양살이 속에서 추사체를 이루었고, 대표작인 세한도 및 일로향실 등 유배시설의 작품입니다.
 

세한도

▲ 판전과 세한도


강남의 봉은사 경판전을 위한 현판인 판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제 제83)은 추사가 죽기 사흘 전에 썼다고 합니다.
 

1844년 완당의 나이 59세 때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정성을 다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입니다.

쓸쓸한 화면에 여백이 많아서 겨울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데, 보이는 것은 한 채의 집과 송백(松柏) 네 그루 뿐입니다. 그림 중앙에 아름드리 노송(老松)이 우뚝 서 있습니다.
 

무량수각 현판

▲ 무량수각 현판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에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의 현판으로 쓴 것입니다
.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로움이 있었는지요
.~~~
일 천번의 법칙이라고 하더니 추사의 훌륭하심에 놀랍습니다.
 

추사고택

▲ 추사고택


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43호로 지정되어 있는 추사고택은 건축 당시 53칸 규모였지만, 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 등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고택 사랑채

▲ 고택 사랑채


ㄱ자 모양의 사랑채는 손님을 접대하고 문학적인 유희를 즐기는 특성이 잘 살아 있는 구조라고 합니다
.
사랑채 앞마당에 추사가 직접 만들었다는 해시계가 있습니다. 앞면에 새겨진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아들인 김상우가 추사체로 써서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석년은 돌의 시간이라는 뜻. 숱한 세월을 품고도 고요하고 평온한 석물은 말년의 추사체와 판전이라는 편액 글씨를 보는 듯 합니다.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 고택 안채


안채는 ㅁ자 모양으로 
6칸 대청에 안방건넌방부엌광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6칸 대청을 흔치 않은 규모의 마루입니다대들보에는 김정희가 쓴 것으로 보아는 글씨가 붙어 있습니다특이한 것은 안채 내의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은 따로 두었는데 이는 왕실 주택 구조로서왕실 사람인 화순옹주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김정희 묘

▲ 김정희 묘


김정희와 첫째 부인 한산 이씨
, 둘째 부인 예안 이씨 세 분이 함께 묻힌 합장묘입니다. 귀양에서 돌아온 김정희는 아버지 무덤이 있는 과천에서 4년간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다가 71세에 생을 마쳤습니다.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화순옹주 홍문으로 가는 길에는 추사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 묘역이 있습니다
. 이 곳은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가 함께 묻힌 묘라고 합니다. 묘소 앞 비문에는 영조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고 하네요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 백송공원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 백송(白松)은 김정희가 25세 때 청나라 연경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씨앗을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식이 어려워서 몇 그루밖에 없는 희귀한 나무라고 해요
하얀색의 소나무가 있다는 것도, 본 것도 처음이라서 신기했습니다.
 

화순옹주의 홍문(紅門)

▲ 화순옹주의 홍문(紅門)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가 각별히 사랑한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였습니다
. 그는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였고, 아내인 화순옹주도 식음을 전폐하고 보름쯤 후 지아비를 따라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남편에겐 열녀이나 세상을 일찍 등져 아비의 가슴을 아프게 한 딸이 원망스러워 영조는 홍문(紅門)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조카인 정조 이산이 고모를 기리며 열녀문을 내렸습니다. 현재는 재실 건물은 주춧돌만 남았고 행랑간의 대문에 홍살문이 덧붙어 있습니다. 윗부분은 홍살과 태극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홍문에 대한 내용이 흰 글씨로 새겨져 있습니다. 단정하고 품격이 느껴집니다.
 

충남 예산의 추사 기념관, 추사고택 사진


추사고택 유적지에는 추사기념관
, 추사고택, 추사체험관, 추사묘, 추사증조부 김한신묘와 추사고조부 김흥경의 묘가 있습니다. 화순홍조 홍문(紅門), 백송(白松)공원, 선생 집안의 원찰이었던 화암사(華巖寺)와 추사필적 암각문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추사고택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관람시간 : 310(9:0018:00), 112(9: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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