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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표적 경세사상가, '초려 이유태' 선생의 제향을 모신 날

2022.09.28(수) 16:59:44엥선생 깡언니(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용문서원
▲ 용문서원 표지석


용문서원
▲ 용문서원(龍門書院, 공주시 상왕동 339-4) 은 조선 중기의 유현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를 향사하고 있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경세 사상가인 초려 이유태 선생은 사계(沙溪) 김장생 선생(1607~1684)의 고제삼현(高第三賢)으로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미촌 윤선거, 시남 유계와 더불어 충청오현으로 일컬어지는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입니다. 효종의 북벌과 개혁 의지를 실현하고자 대개혁안이었던 기해봉사(己亥封事)를 제진하고, 전국적인 향약 시행을 주장했던 초려 이유태 선생은 78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치셨는데요, 1881년 문헌(文獻)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갈산서원과 반계서원이 세워져 그곳에 배향되었고, 저서로는 '초려전집' 2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공주시의 용문서원은 1663년(현종 4) 초려 이유태 선생이 57세에 공주시 중동(현 상왕동)으로 이주한 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사송서재(四松書齋)와 함께 세운 사립교육기관입니다. 원래 명칭은 용문서재(龍門書齋)이었으며, 지금의 용문서원은 1977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고택과 함께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1988년에는 유물관을 지어 초려 선생이 남긴 문서와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용문서원 안내도
▲ 용문서원 안내도〈① 명덕사(明德祠) ② 조도문(組道門) ③ 존성재(存省齋) ④ 중화당(中和堂) ⑤ 서고(書庫) ⑥ 징원당(徵遠堂) ⑦ Toilet ⑧ 초려 고택(草廬 古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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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원당(徵遠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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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당(中和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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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성재(存省齋)


초려 고택
▲ 초려 고택 전경

용문서원은 사우 6칸, 신문 1칸, 좌우 협문 각 1칸, 장서각 6칸, 동재 6칸, 유물 전시관 8칸, 고사 1칸, 대문 3칸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주 이씨 문헌공파 종가에서 관리하는 용문서원의 왼쪽으로는 고택이 있고, 오른쪽에는 부설로 세운 공주전통문화교육원이 자리해 있어 초려 선생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5▲ 집례를 중심으로 용문성원임인구월이일향사분방(龍門書院壬寅九月二日享祀分榜)을 확인하고 있다.

용문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9월에 제향을 올리는데요, 올해는 9월 27일(화) 오전 11시에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모여 제향을 봉행했습니다. 제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용문서원을 찾았더니, 지역 유림과 각지에서 제를 모시기 위해 모인 후손들이 도기(到記: 방명록)를 작성하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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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자(謁者)가 헌관과 여러 집사들을 인도하여 중화당 문밖에 나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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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관들

일반적으로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을 대표해 잔을 드리는 사람을 '헌관'이라 하는데요, 술잔을 올리는 순서에 따라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으로 나눠집니다. 이날 제향의 초헌관은 최원철 공주시장, 아헌관은 김상홍 단국대학교 부총장, 종헌관으로는 오병일 공주향교 전교로 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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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의 절차는 알자 또는 찬인(贊人)이 헌관을 인도하여 준소(尊所: 제의를 행할 때 술잔을 놓는 곳)에 나아가면, 봉작(奉爵)과 전작(奠爵)이 올라갑니다. 사준(司尊)이 덮개를 들고 술을 따르고, 봉작이 잔으로 술을 받으면 헌자는 알자의 인도를 받으며 신위 앞에 나아가 작을 잡아 바치는 과정이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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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헌관 최원철 공주시장이 신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졸작
▲ 졸작(卒爵)

모든 헌작 후에는 음복례(飮福禮)를 시행하고, 축(祝)이 정위 앞 조육을 덜어서 목기에 담아낸 후 준소의 탁자 위에 두니, 초헌관이 졸작을 마시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12▲ 예필(禮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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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촬영

1시간여의 예가 끝난 후, 헌관과 모든 집사, 학생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임인년 9월 2일 향사(壬寅九月二日享祀)를 마쳤습니다.
향사의 세세한 절차와 의미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었지만,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 했던 초려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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