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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후손의 한숨도난당한 선조의 유품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충남의 도난문화재- 서천 월남 이상재 선생 유물

2022.06.15(수) 16:50:14도정신문(scottju@korea.kr)

월남 이상재전시관 전경

▲ 월남 이상재전시관 전경



친필서신 등 유물 11점 도난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은 충청남도 서천(舒川)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YMCA 전국연합회장, 신간회 창립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청년운동가인 인물이다.

그는 박정양(朴定陽)의 추천으로 신사유람단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박정양이 초대주미공사로 갈 때 채용되어 주미공사관 서기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귀국 후 낙향하였다가 승정원 우부승지, 내각총무국장 등 관직을 지냈으며 서재필(徐載弼)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였다.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뒤 고종의 요청으로 잠시 의정부참찬에 머물렀다가 군대 해산이 있은 뒤로는 관직을 떠났다. 

학생 YMCA 전국연합회를 조직하여 3.1운동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3.1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후에는 YMCA 전국연합회장으로 각종 강연회와 농촌운동 등 폭넓은 민족운동과 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1922년에 조선교육협회 회장, 조선일보사 사장, 1925년 전국기자대회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으나 곧 병사하였다. 장례는 한국 최초 사회장(社會葬)으로 치러졌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는 이상재선생의 생가지(生家址)가 있어 건물을 복원해 놓았으며 1990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생가지 옆에는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있어 선생의 유품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최근 리모델링된 전시관은 1991년 유물관으로 건립되어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8년 12월 14일 오전 7시경 도굴꾼이 유물관 출입문 자물쇠를 절단기로 자르고 전시되어 있었던 병풍 1점과 친필서신 8점, 만장 2점이 없어졌다. 도난당한 유물은 선생이 1890년 아들에게 보낸 친필서신과 붓으로 그린 병풍 등으로 비지정 문화재이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은 유물들이었다.

유물을 훔쳐간 도굴꾼은 문화재청 강신태 사범단속반장에게 2001년 2월 붙잡혔다고 한다. 그가 훔친 보물 604호 ‘적개공신 장말손 상훈 교서’와 보물 881호인 ‘어사패도’를 되찾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상재 선생의 유물은 비지정 문화재로 되찾았는지 그리고 되찾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최근 이상재선생의 외교문서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이 기회에 도굴꾼이 붙잡힌 지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상현 충남역사박물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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