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청동기에서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무덤

2021.09.09(목) 17:48:44대로(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시기를 대략 440만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12,000년 전까지의 기나긴 시기가 구석기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돌을 깨뜨려서 도구로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였던 것이지요.

한반도의 구석기시대는 7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석기, 신석기를 거쳐 기원전 1000년 경에 이르러 청동기시대에 접어듭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와 안영리 일대에서도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철기시대인 마한의 주거지 등이 이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공주장선리유적을 찾아가는 길을 쉽지 않았습니다. 입구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장선교를 건너 600m 지점에 장선리유적이 있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좁은 시골길을 따라 서서히 차를 몰았습니다.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갑니다. 다행히 반대편에서 오는 차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이곳에서 차를 세웁니다. 차를 길가에 두고 두리번거렸지만, 논과 밭, 민가 등만 보였지요.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하는 수 없이 차를 더 몰고 가니 터널이 나타납니다. 터널 위에서 씽씽 달리는 차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고속국도가 지나가나 봅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터널을 지나자 잔디밭이 조성된 너른 주차장이 나타났습니다. 주차장에는 차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장선리유적 주차장입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주차장 옆에는 큰 도로가 있고 차들이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곳은 논산천안고속국도변입니다. 원래 이곳에 탄천휴게소를 만들려고 했다 합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그런데 이곳에서 청동기시대에서 원삼국(마한)시대에 이르는 분묘와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던 것이지요. 충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의 조사 발굴 작업이 없었다면, 영원히 묻혀버릴 뻔하였군요.
특히 흙방(토실, 흙을 파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지은 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조사된 유적으로 문화사적·고고학적으로 중요하며 삼국시대 초기 주거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주거지나 무덤 등이 중첩되어 있어 이 지역의 주민과 생활상의 역사적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인정되어 2001년 9월 11일 사적 제43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청동기시대출토유물>

청동기시대 유적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송국리유적과 같은 단계의 서기전 7∼6세기로 추정되며, 주거지 4기, 원형 유구 30여 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독널무덤[甕棺墓] 1기가 조사되었으며,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송국리형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송국리형토기란, 충청남도 부여시 초촌면 송국리 유적에서 처음 출토된 민무늬토기 항아리로 청동기시대에 충청도와 전라도의 서부지방에서 만들어져 사용된 토기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원삼국시대출토유물>

원삼국(마한)시대의 집자리와 구덩[竪穴] 유구는 3세기 중엽에서 4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삼국(마한)시대 유적은 직사각형 모양의 집자리 5기, 주거지로 추정되는 흙방 유구 39기, 직사각형 구덩 유구 15기, 굴무덤[橫穴墓] 1기가 조사되었습니다.
이곳에서도 다량의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구릉지에 작은 무덤 같은 것들이 많이 보이고 야자매트를 깐 길이 조성되어 있어 편하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가까이 가보니 토실OO호 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 무덤 같은 것들이 수십 개 늘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발굴 후 다시 덮은 후 봉분을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공주장선리유적전경>

공주장선리유적 발굴 당시의 모습 사진입니다. 곳곳에 집터와 무덤, 둥근 구덩 모양 등이 수없이 널려 있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이곳에서는 원삼국시대 흙방 주거지가 4기가 발견되었습니다. 흙방 유구는 지하에 움[土壙]을 파서 조성한 것입니다. 1개 혹은 여러 개의 구덩이가 연결된 구조가 있고 땅속에 저장실, 내실, 거실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규모는 길이 366∼490㎝ 내외입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원삼국시대수혈주거지>

출토 당시의 흙방 모습입니다. 주변에 구덩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저장구덩이로 판단된다고 해요, 평면형태는 직사각형, 정사각형, 원형, 사다리꼴 등 다양한 형태이며, 생활공간인 흙방보다는 규모가 작으며, 바닥을 편평하게 정지한 단순한 구조입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청동기 집자리 조사 후 전경>

이 주거지는 송국리형 주거지의 중기에 해당하는 형태로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원삼국시대 유구로는 토실유구, 움집터[竪穴住居址] 등 다양한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는데, 토실유구는 새롭게 확인된 유구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생활용 토기로 이곳이 생활유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해요. 참고로 송국리형 주거지는 집자리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함께 기둥 구멍이 배치된 형태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조사된 흙방 유구가 있는 공주장선리유적 사진

장선리유적에서 청동기시대∼원삼국(마한)시대에 이르는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확인됨으로써, 선사시대 지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주었습니다. 특히 흙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것으로 의미가 있으며, 원삼국시대 생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합니다. 그 성격에 대해서는 향후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된다고 하는데 기대가 됩니다.

<공주 장선리유적>

충남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 151-6번지

* 이 글은 고고학 문외한인 필자가 자신이 담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문화재청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자료 등을 참고하여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자기 생각을 적은 글로써 다소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