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사람향기]당진 독일마을을 찾아서

2021.04.16(금) 10:45:25충남포커스(jmhshr@hanmail.net)

[사람향기]당진 독일마을을 찾아서 사진


주말을 맞은 10일 오후 이름만 들어보았던 당진 독일마을이 궁금해져 네비게이션에 주소(당진시 고대면 고대로 623-63번지)를 입력하고 시내에서 출발해 달려가는 길목에 뜻밖에 드라이브스루에 적격인 벚꽃길이 펼쳐집니다. 시내와 달리 아직도 풍성한 꽃잎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네비게이션 목소리 고운 여성분이 반대로 돌아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바람에 마주할 수 있는 감동 길 이었습니다.

일부러 자세한 정보를 얻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나름 상상해보았습니다.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이색적인 볼거리와 풍경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도착했습니다.

‘독일마을’ 안내 표지판을 따라 마을을 내려가는데 그저 평화로운 여느 시골 전원마을과 다를 바 없어 내심 실망합니다.

마침 마당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던 한 어르신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올해로 83세이신 인규환 씨는 십여 년 전 독일마을이 조성된 이래 이곳에서 여생을 아내와 보내고 있습니다.

인규환 씨는 공부를 더하고 싶어서 26세 되던 해 독일에 처음 발을 딛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광산에서 일을 하는 동안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어느 한 날은 수 십 미터 동굴 속 암벽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왼쪽 발이 큰 바위에 끼는 바람에 꼼짝없이 죽게 됐습니다. 그때 파트너로 일했던 터키인 동료가 또 언제 무너져 내려 본인도 위험에 처하게 될 상황에서도 본인이 가지고 있던 장비를 이용해 구해 함께 탈출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나는 지상에서 일을 하게 됐고, 그 친구는 지하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다오. 내 삶에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내 생명의 은인이었던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전하지 못했다는 거요.”

이야기 하면서도 금세 눈시울이 젖어드는 그의 얼굴에서 생명의 은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그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서 일을 했지요. 박정희 대통령 당시 우리나라는 가발을 만들어 독일에 수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어요. 저는 코트라에서 독일 수출 시장조사를 해서 한국 정부에 보고하는 일을 했지요.”

그렇게 인규환 씨는 이후로도 국내 무역회사와 손을 잡고 일을 이어가며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나 슬하에 2녀를 두고 50여 년을 독일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 고향인 당진에 지자체가 나서서 독일마을을 조성해주겠다고 하니까 망설임 없이 귀향했던 겁니다.

“이 마을이 조성되기 전에 당시에는 군수님이었지요. 독일 충청향우회에 방문해 독일마을 조성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남해 독일마을 못지않은 관광지가 될 수 있을 만큼 멋진 곳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꿈도 꾸고 그랬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아참, 이참에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더러는 당진시민들 가운데 이곳 땅이나 집을 무상으로 지어준 줄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아니거든요. 택지를 조성해 놓았을 뿐 땅도 내 돈 주고 사고, 집도 내 돈 들려 지은 거랍니다. 엄청난 혜택을 누린 것으로 잘 못 알고 계신 분이 더러 있어서 말씀드리네요.”

그렇게 인규환 씨의 속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후에 동석한 아내 분이 신문사에서 왔다니까 “한국 사람이 영어 단어가 금세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아직도 저희는 한국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아서 말이 끊길 때가 있어서 참 당황스러워요.”하고 말문을 열어 하소연 합니다.

“얼마 전 75세 이상이면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기에 당진시청이고 도청이고 여기 저기 문의를 했는데 외국인이라 안 된다는 거예요. 투표도 하고, 세금도 내는데 우리를 외국인 취급하면서 차별을 하더라구요. 우리가 대한민국 사람이지 외국인이 아니잖아요? 하도 기가 차서 결국 인권위에 말했더니 나중에는 된다고 하더군요. 참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때는 정말 실망스러웠답니다. 뉴스를 보면 파독 간호사, 광부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살린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재외국민들을 위한 행정체계가 자리 잡지 못해 더러 불이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보다 더 오랜 세월을 독일에서 살았으니 그곳이 더 편할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고국을 잊지 않고 머리가 희어진 지금에서라도 돌아와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분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는 못할지언정 말도 안 되는 차별로 더 이상 상처 주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욕 먹일까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코리아를 들어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들이 너네 일본사람이냐, 중국 사람이냐고 묻고, 거리에는 온통 일본과 중국 기업들을 알리는 간판이 즐비해 주눅 들어 있을 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삼성 간판이 광장에 세워졌는데 그것을 보고 감격해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우리 아이들이 독일에서 나고 자라다보니까 정체성 확립이 안 돼 안타까워하던 중 내 나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타국에서 살면서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 부부에게서 오랜 세월 살아도 낯선 타국에서 고국을 얼마나 그리워했고, 또 사랑했는지 느껴졌습니다.

남해 독일마을처럼 화려한 관광지도 아니고, 볼거리조차 하나 없는 평범한 곳이었지만 깊숙한 울림이 있는 사람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