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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비단보’로 꼭꼭 감싸온 보석, 금산 방우리마을

2019.09.16(월) 11:52:22금산신문(gsnews4700@naver.com)

우리 고장 부리면에 있는 육지 속 섬마을 방우리를 아십니까?

후도마을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작은 방우리(농원)

▲ 후도마을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작은 방우리(농원)


방우리는 전북 무주와 충남 금산이 만나는 곳, 적벽강에 방울처럼 매달려있다 해서 붙여진 오지마을이다. 행정구역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이지만 정작 금산에서는 이 마을로 들어갈 길이 없다.

물론 부리면 수통리에서  방우리까지 이어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트레킹 코스가 있긴 하지만 두 번의 도강과 없는 길도 만들어야만 갈 수 있기에 일상 생활하면서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방우리로 가는 길은 전북 무주읍을 거쳐 돌아 가는 것이 현재로선 유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을 주민들의 각종 경제적, 사회적 활동과 의료및교육등 행정을 제외한 모든 생활권은 금산이 아니라 무주권에 속한다.

무주읍 내도리 앞섬대교를 건너자 마자 나오는 앞섬 마을에서 좌회전하여 10분쯤 달리다 보면 바로 촛대 바위를 지나 염재가 두 갈래길로 나뉜다.
 

무주읍 내도리 앞섬마을에서 방우리로 향하는 이정표

▲ 무주읍 내도리 앞섬마을에서 방우리로 향하는 이정표


촛대바위를 지나 직진하면 큰방우리 마을이고, 우측 가파른 비탈길 염재를 넘어 가면 보이는 곳이 농원(일명‘작은방우리’)마을이다. 뾰족하게 솟아 오른 촛대바위가 방우리를 찾는 이방인을 처음으로 반기는 이정표가 된다.

염재는 농원으로 넘어 가는 경사가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언덕으로 농원까지 이어진 울창한 숲과 절벽이 만들어 낸 거대한 병풍은 방우리의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와 하얀 모래 사장이 두말 할 나위 없이 맑고 깨끗해 보였다 가을로 접어든 9월 필자가 찾은 날은 비가 오락 가락 하면서 강물도 불어나 있었지만 거울처럼 맑은 금강은 짙푸른 산세와 솜털 같은 구름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처럼 온전히 자연이 보존된 것은 워낙 오지인 까닭이 아닐까 하면서도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참 불편 하겠다는 생각도 가져 보게 된다.

그나마 지금은 차 한 대 지나 가기에도 벅찬 좁은 포장길이 속세와 마을을 이어 주는 유일한 통로지만 10여년전 만해도 바깥 나들이를 하려면 강을 건너고 산길을 넘어 5km 이상을 걸어 다녀야 했다고 한다.

방우리 마을로 향하는 진입로에 서있는 촛대바위

▲ 방우리 마을로 향하는 진입로에 서있는 촛대바위


현재 큰방우리 12가구와 농원 9가구등 총21가구 40여명 정도가 벼, 고추를 가꾸고 인삼밭을 갈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가 없다. 마침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 수퍼트럭이 마을을 돌고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다.

또하나 특이한 점은 두 마을 사이 산 밑으로 터널을 파 끌어들인 강물을 낙하시켜 전기를 얻는 소수력발전(유역변경소수력발전) 시설도 있다.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는 오래도록 살지 않은 빈집이 꽤 많이 보였다. 흙벽은 낡아 무너져 있고 마당엔 무성한 잡초들이 제집인 양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지어진지 얼마 안돼 보이는 경로당이 있지만 주민들 대부분이 고령자임에도 불구하고 들녘에서 일을 하느라 적막하기만 하였다.

방우리 지역은 오랜시간 자연 침식 작용에 의해 적벽강으로 둘러 쌓여진 배산임수 그 자체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위,아래로 논과 밭이 형성 되었고 마을 밑으로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절세의 산과 절벽이 그림 같이 둘러쳐져 있다.

방우리는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들어와 정착했다고 한다. 먼저 큰방우리에 둥지를 튼 다음 일부는 농원으로 이주하여 터를 잡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곳은 설씨의 집성촌인데 두마을 총21가구중 20가구가 설씨이다.

한편, 강변 불모지를 개간해 논밭을 일군 이마을 사람들의 실제이야기는 1963년 신영균과 최은희가 주연을 맡고 신상옥감독이 연출한 영화 ‘쌀’의소재가 되기도 했던 농원으로 향했다. 염재를 넘어가니 산과 강으로 둥글게 둘러 쌓인 분지처럼 생긴 곳에 인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바로 농원이다.

마을입구에 ‘방우리습지’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방우리 일대 약2㎢ 넓이의 방우리 습지는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지역으로 멸종 위기의 수달, 감돌고기, 수리부엉이, 돌상어등 수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다.

이제는 방우리가 많이 알려져서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물놀이나 낚시, 기타 마을 탐방등 이지만 여전히 민박집 하나 없고 그 흔한 구멍가게 조차 없는 마을이기 때문에 숙식을 해결하기가 어려워서 잠시 머물러 가는 여행객들이 많다.

특히 방우리에서 가장 절경을 자랑하는 곳은 수십에서 수백미터 높이로 솟은 절벽이 강가를 따라 수km정도 이어지는 적벽강은 방우리에서 시작해 하류인 수통리까지 이어진다.

높은 절벽이 노을에 반사되어 붉은색을 띤다고 하여 적벽강이요 불타는 듯한 가을 단풍이나 저녁 노을이 강물을 붉게 물들인 다고 해서 적벽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시간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은 인간을 보듬으며 조화를 이룬 오지마을 방우리는 아직까지도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 에 의하면 전도(앞섬), 후도(뒷섬), 죽도(진안 가막리) 등 경치좋은곳으로 전하여지는바 현재에도 모두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기 때문에 난리를 피할만한 가장 좋은곳이다.

조선 선조시대에 정여립이 역모를 모반한 후 인근 진안 죽도로 피신한 곳 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시골 마을의 정겨움과 포근함을 느껴보는 것도 좋고 가족과 함께 인적 없는 마을에서 무념무상의 휴식을 취해도 좋겠지만 촛대바위부터 큰방우리와 농원까지 혼자 걸으며 나를 찾아 떠나는 사색의 시간으로 할애해도 좋겠다.
 

큰방우리 들녘에 있는 고추밭 전경

▲ 큰방우리 들녘에 있는 고추밭 전경

원주민이 떠남으로 인한 폐가로 전락한 모습

▲ 원주민이 떠나 폐가로 전락한 모습


● 찾아 가는길 만만하지 않아요
초행자에게 방우리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도 찍히지 않고 일부 휴대폰은 시계기능에만 충실하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무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다음 싸리재터널을 지나 무주읍내로 들어간다.

반딧불 주유소앞 3거리에서 좌회전 내도리 방면해서 3~4분쯤 달리면 앞섬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자 마자 좌회전하여 약2㎞지점의 갈림길 촛대바위에서 직진하면 큰방우리 우회전해서 염재를 넘어가면 농원 작은 방우리이다 걷기를 매우매우 좋아하고 방우리를 제대로 보길 원한다면 촛대바위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둘러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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